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비 내리다 갬ㅣ연구 용역 심의 (8-03-Wed) 본문

일상

비 내리다 갬ㅣ연구 용역 심의 (8-03-Wed)

달빛사랑 2022. 8. 3. 00:28

 

 

후배 S가 교육청을 찾았다. 식성이 까다로운 그에게 점심으로 무얼 사줄까 물었더니, 콩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시청 근처 '명인콩국수'에 들렀다. 자칭 미식가답게 S도 '명인콩국수'를 알고 있었다. 나는 곱빼기를 먹었고, 그는 보통을 먹었다. 희한하게도 그는 콩국수가 짜다며 냉수를 반 컵 부어먹었다. 그나마 명인식당 콩국수가 무척 진했으니 망정이지 다른 식당 콩국수였다면 밍밍해졌을 것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섭생에도 개성은 있는 법일 테니.

식사를 마치고 내 사무실로 돌아와 함께 차를 마시다 1시쯤 S는 친구 부친 빈소가 마련된 인하대병원으로, 나는 '지속가능발전목표와 문화정책' 관련 연구용역 심의가 있는 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심의위원은 모두 7명, 그중에서 두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제안서를 올린 팀이 한 팀밖에 없어서 심의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나를 제외한 6명의 심의위원들은 모두 전문가들이어서 질문들이 무척 날카로울 줄 알았는데, 두어 명의 질문은 제안서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기보다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던진 질문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나 가능할 법한 질문을 해서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심의를 마치고 신포시장 쪽으로 걸어오며 후배 장(張)이나 최근 들어 자주 신포동에 '출몰'하는 창수 형에게 연락해 소주 한잔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날도 덥고,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그 시간에 집에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번 버스의 에어컨 성능에 감동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주 월요일 아버지 기일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물었다. 다음달 초가 바로 추석이니 이번 기일에는 음식 만들지 말고, 묘역에 들러 간단히 예배를 보는 것으로 기일 추모 예배를 가름하자고 했더니 무척 반색했다. 장남도 아니고 첫째 며느리도 아닌데 매번 기일 음식을 준비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동생은 자신의 아내(제수씨) 생각이라며, 내년부터는 엄마 기일도 설날에 몰아 치르고 (엄마 기일과 음력 설이 붙어 있다), 여름이나 초가을, 아버지 기일에 가족들이 모인 후, 추석은 각 가정이 따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한마디로 명절은 설 명절 하나만 쇠자는 말로 들렸다. 일단 생각해 보마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봐야 일 년에 두어 번 모이는 건데, 그만큼도 안 모이면(만나면) 도대체 가족으로서의 결속력이 만들어질까 의문이 들었다. 동생도 맘에 걸렸는지, "그냥 말해 보는 거예요. 제 처가 그런 제안을 하더라고요. 결론을 내리지 말고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판단하기로 하지요. 뭐."라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부모님이 하늘에서 보셨다면 무척 실망하셨을 게 틀림없다. 그분들은 자손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의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무리 형제 사이라 해도, 안 보면 멀어지게 마련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나서, 내년부터는 소박하게라도 내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을 우리집으로 불러모아야겠다고 마음억었다. 그래야 내 아들과 조카들에게도 본이 될 거라 믿는다. 번거롭고 귀찮다고 해서 자식(후손)의 본분을 하나둘 (부모들부터)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수현이나 조카들에게 무슨 본이 되겠는가. 번거롭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당히 해야겠다.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사실 그건 번거로운 일도 아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