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순댓국을 먹고 싶었지만.... 본문
느지막이 일어나(사실은 서너 시쯤 깼다가 6시쯤 다시 잤지만) 미역국을 끓여 아침을 먹었다. 원래 일요일 오전에는 이것저것 할 일이 참 많은데, 오늘은 주로 누운 채로 음악을 듣거나 뉴스를 보았다. 그러다 책상 앞에 앉으면 유튜브나 영화를 보았다. 오후에 잠깐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깜짝 놀랐다. 바람도 강하고 기온도 어제보다 많이 내려간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음식물 수거통이 테라스에 있어서 양말도 신지 않고 잠옷차림으로 나갔다 왔더니 온몸이 진동벨트 위에 올라간 사람처럼 오들오들 떨렸다. 간사한 몸 같으니라고....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댓국밥이 먹고 싶었다. 집 근처 문전성시를 이루는 신포순댓국집이 있어서 왕복 5분이면 순댓국을 먹을 수 있었는데.... 결국 사러가지는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아침에 끓여놓은 미역국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다. 먹고 싶은 걸 귀찮아서 포기하다니.... 나이를 먹은 게 틀림없다. 오후에 남은 미역국에 밥을 넣고 끓여서 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맛이 있었다. 남은 미역국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다보면 양을 정확하게 계량하지 못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듯 그날 만든 음식을 그날 모두 먹어치웠을 때 맘이 개운하다. 어둑어둑해질 때, 다시 순댓국이 생각났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외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 순댓국밥을 포기한 것은 (이제는 원칙이 되어버린) 오래된 나의 습성이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밖에서 일하다 일단 집에 돌어오면 다시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린다. 물론 종일 집에 있다가 오후에 외출하는 것은 간혹 있긴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이 연락을 해도 (귀가 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들어와서 씻고 책상 앞에 앉으면) 만나러 다시 외출하지 않는다. 그건 생활의 리듬 문제와 관련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할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왔으면 그때부터는 집안 내에서 작동하는 생활의 루틴에 따라서 시간과 일정을 조직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게 깨지기 시작하면 하루의 마무리도 어수선해지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도 부담스러워질 게 틀림없다. 밖의 일과 안의 일,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 개인적 존재로서의 나가 구별되지 않으면 왠지 모르지만 내가 불행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적 영역에서 나홀로 경험하는 고독과 적당한 쓸쓸함이 나는 좋다. 사회적 존재로서 타인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지낼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상대방으로부터 '나와 만나는 걸 싫어하는 것인가'라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결정 장애를 앓고 있는 내가 유일하게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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