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이보다 좋을 순 없는 본문
정말 좋은 날씨, 빨래하기 좋은 날씨,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날씨, 추억을 배달하는 친절한 날씨, 누군가 오늘 가장 먼저 내게 전화하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날씨, 그러다 문득 엄마가 생각나 눈물이 찔끔 흘린 날씨. 엄마 미안해, 너무 힘들었지? 너무도 힘들었을 그 시간을 바라보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해요. 방치한 것 같아 미안해요. 아무리 수백 가지 변명거리를 생각해도 결국에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게 만드는 엄마, 하늘을 보세요. 너무도 아름다워요. 저리 아름다운 하늘을 엄마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보여줬던가요. 하지만 나의 미안함이, 나의 죄스러움이, 나의 반성이 엄마를 이곳으로 불러올 수는 없잖아요. 분명 이곳보다 편하고 그림 같을 그곳에서 내 걱정일랑 마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요. 나는 생각보다 잘살고 있어요. 가끔 오늘처럼 아름다운 하늘과 겸손한 날씨에 감동하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살고 있답니다.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지켜보며 나와 가족의 행복을 그곳에서 빌어주세요. 나도 이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엄마 생각에 슬퍼지는 게 아니라 엄마도 같은 풍경을 보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환하게 웃을래요. 봐요. 저 하늘, 기분 좋게 팔뚝을 간질이는 가을바람, 느껴보세요. 낮에는 기분 좋은 날이라서 장도 봤어요. 마트로 가는 길이 그야말로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였어요. 달걀과 상추, 오이와 시금치, 양배추와 고추, 두부와 냉면 육수, 떡국 떡과 사이다를 샀지요. 양파와 파도 샀어요. 휴지와 주방 티슈는 홈쇼핑으로 구매했어요. 냉장고가 그득해졌어요. 이제 열흘 정도는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저녁에는 묵은김치를 꺼내 찌개를 했지요. 새로 구매한 김치는 개봉도 하지 않았어요. 추석 때 제수씨가 준 김치도 남았답니다. 더할 나위 없는 넉넉함이지요. 정말 좋은 날씨,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날씨에 엄마가 생각난 건 당연한 일이고요. 이런 날씨가 선물처럼 며칠 지속된다면,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보다 좋을 순 없는 날씨는 확실히 내겐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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