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종일 비 내리다 본문

일상

종일 비 내리다

달빛사랑 2021. 4. 3. 00:16

종일 비 내렸다. 외출을 부추기는 비였지만,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국수 끓여 먹고 김치전 만들어 먹으며 영화를 봤다.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아이팟 프로 이어폰이 오늘 도착했다. 주변 소음을 제거해주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인데, 착용해보니 딴세상을 만난 것 같다. 이제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주변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약해지기는 했지만 비는 알뜰하게 도시를 적셨다. 낮잠을 잘 때는 현란한 꿈을 꾸기도 했다. 비몽사몽 간에도 복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첨된 적은 별로 없지만 잠결에서는 당첨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몇 통의 부고를 받았다. 이러저러한 관계에 얽혀 도착한 부고였겠지만 고인 생전에 만나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양치를 하다가 엄마가 앉아서 등물을 하던 욕실 의자를 보자 엄마의 마지막 며칠이 또 떠올랐다. 엄마가 마지막까지 나를 배려하고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분이었지'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교적 행복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곤 한다.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던 적도 있었다. '당신이 나를 알아요?'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시련을 과장하고 싶었했다. 위로받고 싶었서였을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당시에는 세상을 다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니까.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일부러 더 나를 슬픔과 고통의 극단으로 밀어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가늠하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려는 부질없는 호승심 때문에 말이다. 비는 늦은 밤까지 계속 내린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만나는 세상과 잠시나마 단절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봄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