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작가에게 필기도구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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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가의 상상은 무척 신선하고 재밌다. 그리고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나는 작가의 상상에 공감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기도구와 작업 기제들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육필 원고를 쓰던 선배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의 감촉, 필기감이 그의 작업 속도와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효과는 심리적 차원에서만이 아닌, 실제적으로도 나타났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업하는 요즘 작가들에게는 해당 소프트웨어의 편의성과 키보드의 키감 등이 작업의 효율은 물론 심리적 만족감을 좌우할 것이다. 물론 젊은 작가 중에서도 만년필이나 볼펜과 같은 아날로그적 필기도구를 사용하는 분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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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시력장애로 고통을 겪던 니체는 덴마크제 몰링 한센 타자기를 구입했고 그 사물 덕분에 새로운 방식으로 집필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은 손으로 펜을 쥐고 필압을 조절해가며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니체가 수기에서 타자로 넘어가며 거의 경의를 경험했을 거라고 믿는다. 니체의 의사이자 친구였던 자끄 로제,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학자 고병권 등은 1881년 이후 니체의 변화를 기록하며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경쾌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어떤 정신의 도약을 경험했는지를 궁금하게 여기며 그의 변화에 주목하는데(“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권력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는 어떻게 태어난 걸까? 차라투스트라의 집필을 앞두고 그는 어떤 체험을 했던 것일까?―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003), 나는 그 변화의 원인들 가운데에 타자기를 밀어 넣고 싶다. 니체는 두들겼을 것이다. 근육과 뼈에 스트레스를 주는 지속적인 압력에서, 순간적이고도 가벼운 타격으로 넘어가기,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매번 지연되는 글쓰기에서, 보다 빠르고 단호한 리듬이 실린 조립으로 넘어가기. 새로운 툴(tool), 그것은 시작부터 니체의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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