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ㅣ심각한 인천 상황 본문

자주 가는 동네 마트에서 개점 1주년 기념으로 6천 원 하던 달걀 한 판을 1.980원(1인 1판)에, 3천8백 원 하던 대파 한 단을 1.480원에 할인 판매한다는 문자가 왔다. 조기 품절 될까 봐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한 판, 두 단 사 왔다. 어제 운동하고 오다가 간단 장을 보기 위해 들렀을 때는 달걀과 대파값이 너무 비싸서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왔는데……. 막걸리 서너 통 값 굳었다. 가끔은 선택 장애(나는 신중한 성정이라고 우기고 있긴 하지만)가 뜻밖의 이문을 가져다주기도 하네.
모두가 불안한 시국과 흉흉한 소문을 아파하고 있는데, 나는 고작 이런 소소한 이문(利文)에 너스레를 떨고 있으니, 나 원 참. 김수영 시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 중에서)

인천 상황이 심각하다. 오늘은 부평 갈릴리장로교회 교인 2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앙생활이 삶의 동력이자 이유인 교인들에게 예배는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이자 신의 뜻을 확인하고 받드는 의미 있는 행위다. 하지만 예배가 건전한 믿음의 실천이 아니라 배타적 신념으로 왜곡될 경우, 광신적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런 광신적인 교인들에게 예배는 비밀결사의 비장함마저 느끼게 하는 의무적인 절차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기복을 위한 갈망만 있을 뿐이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예수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버린 목회자의 명령이라면 성서의 뜻과 다르더라도 목숨을 걸고 따르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발적인 격리와 비대면 예배을 종용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대통령의 일갈처럼 사회적 강제가 필요하다. 그들 소수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온 사회와 구성원들이 위험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권력이란 바로 그런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의 발호를 제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와 무제한의 자유 운운하며 타인의 삶과 행복을 부정하는 세력을 용인하는 행위는 자신을 공동정범이라 인정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번 기회에 기독교 반공주의의 민낯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종교의 탈을 쓴 채 구악을 유지하려는 퇴행세력과 정치 좀비들을 일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도 그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스스로 성찰하며 자정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그것이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혜량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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