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본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말들을 기다리며 본문
요즘 SNS나 뉴스 보기가 두렵다. 왜곡, 과장된 허위 정보가 나열된 글을 읽어 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욱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찔러대는 칼을 품은 말들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연예인 중 그 '언어의 칼'에 찔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연예인들의 내밀한 속사정이나 당시에 그들이 앓고 있던 정신적 공황이 근본 원인이고 ‘악플’은 상황을 악화시킨 부차적 요인일지도 모르겠지만 본질적이든 부차적이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날 선 언어의 칼끝이 겨냥하는 대상이 연예인인 것만은 아니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을 비롯한 유명인일 수도 있고 직장의 상사나 동료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동종(同種)의 일을 하지만 생각이 다른 가까운 지인일 수도 있다. 대개는 상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거나 공격에 대한 반사적 대응이라고 윤색되기 일쑤지만 사실 이것은 감정의 배설이거나 분풀이일 뿐 결코 정당한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칼을 품은 글과 말들이 횡행하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것이고 올바른 논쟁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정보의 무차별 유통이 가능해진 현실과 욕설을 해도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는 익명성, 정보의 비대면성, 비대칭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문학과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경시 풍조도 비어(蜚語)와 날 선 말들을 횡행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존재로서의 자신과 세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이 부족하다 보니 논(論)은 사라지고 설(說)만 무성하게 되는 것이다. 논을 이길 수 없는 ‘썰’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란 대개 허장성세와 거친 무기를 자신의 언어 위에 장착하는 것뿐이다. 오늘날 SNS나 인터넷 소통방식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말을 교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천박한 사고와 조악한 지식을 손쉽게 위장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의 오염과 인간관계의 훼손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진영에서만 통용되는 논리로 사실을 과장하고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민심은 양분되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될 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임무다. 그리고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규명하여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증오의 사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사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전투구의 현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정치인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망한 일일 뿐이다.
언론 역시 특정 정치 세력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변인으로 전락해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니 대중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언론을 선택하고 기자들 역시 특정 정파의 필터에서 걸러진 내용만 기술하여 그들에게 아부하거나 기생하는 ‘기레기’를 양산한 지 이미 오래다. 대중들에게는 앞서 이야기한 인터넷 환경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나 인문학적 교양의 부재와 같은 철학적 문제보다 어쩌면 이러한 정치와 언론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어차피 말과 글은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시대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어내지 못하는 이상 쉽사리 순해질 순 없다. 따라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유효한 정책을 고민해야만 한다. 일단 초중고 교과 과정 내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동시에 어릴 때부터 토론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 또한 국민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국민소환제의 절차와 과정을 간소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참견하고, 왜곡을 일삼는 언론은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허가제로 되어 있는 종편의 심사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실 정치 권력을 누가 획득하느냐에 따라서 그 추진 절차와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라면, 결국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의 힘은 국민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원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몇 해 전 촛불혁명을 통해 부조리한 권력을 몰아내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권력을 국민의 이름으로 승인해 준 경험이 있다. 세상을 개혁하고 부조리를 발본하라고 우리의 권리를 새 정부에 일임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선출된 정부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선출해 준 국민의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선출한 정부는 검경은 물론 사법부, 언론, 정치 등의 영역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이 바라는 국가를 만들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잊고 촛불 이전 정부의 전철을 밟는다면 국민은 다시 또 그들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에서 국민은 현실 정치와 언론, 사법 현실에 더욱 간섭하고 더욱 참여하여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한 적극적인 참여와 비판 속에서라야 방향을 잃은 분노와 저주, 거짓과 왜곡의 날선 말들은 애초의 의미를 지닌 말들로 비로소 귀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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