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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봄 기운에 들렸다(憑) 본문

일상

봄 기운에 들렸다(憑)

달빛사랑 2020. 3. 17. 16:30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봄날의 시간은 빈틈없이 흐르고 있다. 서서히 꽃망울들도 봄볕 속에서 벙글 시기를 타산 중에 있다. 바람의 결은 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눈 시린 햇살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햇볕이 전보다 오랜 머물다 가는 내 방안에서 나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간간히 낮잠을 잔다. 많진 않지만 궁색하지도 않을 정도의 통잔 잔고도 있고 잔병치레를 한 번도 하지 않고 겨울을 견뎌준 고마운 엄마도 있으며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넉넉하다. 뉴스만 보지 않는다면 더없이 평온한 하루하루다. 하지만 이 평온이 나는 불안하다. 지금도 사선을 넘나들며 힘든 일상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향기 나는 웃음소리가 처처에 가득해도 나는 온전히 꽃들 앞에서 마주 웃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평화를 누리는 것 같아서, 내 몫이 아닌 행복함을 몰래 숨겨놓고 꺼내보는 것 같아서 몹시 미안하고 많이 불안하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밤마다 전쟁하는 꿈을 자주 꾼다. 내 머리 위에서 공중전이 펼쳐지고 불꽃놀이 하듯 전투기가 펑펑 터지는 꿈, 기관총소리는 요란하고, 집에서 숨죽이며 적의 동태를 살피는 꿈, 꿈속에서도 불안해서 제발 이것이 꿈이었으면하고 바라는 꿈, 그러다 깨면 안도감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서 어둠을 응시하게 되는 꿈 …… 들과 산, 거리에는 온통 봄이지만 아직 봄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이 숨 가쁜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미안하고 불안한 나에게 봄은 여전히 먼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자주 든다. 봄 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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