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뭇국을 끓이며 본문
후배가 보내준 소고기를 넣고서 뭇국을 끓인다. 들큼하거나 특징 없는 무맛이 마늘과 파, 다시마와 멸치, 소고기를 만나 구수하고 담백한 뭇국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늘 신기하다. 그리고 문득 나도 무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자체 무미(無味)해 보이지만 주변과 어울리면 그 주변의 분위기를 ‘맛있게’ 만들어주는 존재, 각각의 맛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마늘이나 고춧가루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참기름이나 식초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나는 애초에 그들처럼 강하고 톡 쏘거나 달달한, 그래서 어디에 있으나 자신이 지닌 특별한 개성으로 존재증명을 마치는 사람은 못 된다.
내가 수줍음과 눈물이 많고 낯을 무척 가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한 성정을 들키기 싫어서 활달함과 친화력이 갑인 듯 오버액션 했던 것일뿐…… 자기주장이 확실해야 사회생활하면서 이러저러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고 소속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애잔한 생존방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무, 한자 없을 무(無)와 발음이 같은 채소, 이름까지도 얼마나 철학적인가. 톡톡 튀거나 도드라진 맛(개성)은 없지만 주변을 빛나게 해주고 관계의 시너지를 증폭시켜줄 수 있는 무 혹은 무(無) 같은 사람……. 뭇국이 끓는 시간, 주방철학파의 사색 또한 깊어지는 시간.*^^*
다 끓었군.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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