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10년은 더 젊어지신 태인 씨 본문
태인 씨는 오늘 미장원을 다녀왔습니다. 머리를 하실 때면 매번 본래 살던 3지구 단골 미용실까지 기어코 그 먼 길을 걸어갔다 오곤 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늘 조마조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는데 오늘은 누나의 성화에 못 이겨 집 근처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오셨습니다. 한 편으로는 구순 연세에 세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 올 만큼의 근력이 있으니 다행스러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노인들의 보행은 변수가 많아서 결코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 역시 매번 만류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슬쩍 나가서 머리를 하고 오는 바람에 번번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지요. 오늘은 누나의 성화가 있긴 했지만 아마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최근의 근력이나 몸 상태로 3지구까지 걸어가는 것이 다소 버거운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지근거리에서 머리를 하게 된 건 정말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 만큼 근력이 약해진 걸 스스로도 알게 되었구나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한편으로 슬퍼지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미장원에 가신 지 두어 시간이 지나서 누나와 함께 돌아오신 태인 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껏 봐왔던 할머니들의 전매특허 뽀글이 펌(퍼머)을 한 게 아니라 살짝 웨이브를 넣고 염색을 한 모습으로 오셨더군요. 거짓말 안 보태서 정말 10년, 아니 15년은 젊어 보였습니다. 태인 씨도 무척 맘에 드는 표정이었습니다. 태인 씨가 내 눈앞에 보이는 모습대로 10년, 1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만큼 나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쭈글쭈글한 태인 씨의 주름도 사랑합니다. 태인 씨는 여전히 나에게는 나이든 소녀이자 인생의 스승이고 내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봐요. 근처 미용실에서도 엄마가 좋아하는 머리 모양을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이제 멀리 가지 마시고 근처에서 머리를 하길 바랄게요. 모쪼록 백 번만 더 하시고 나랑 헤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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