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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추억을 외면했던 것은 정작 나였다 본문

일상

추억을 외면했던 것은 정작 나였다

달빛사랑 2019. 5. 12. 16:49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가슴 시린 사랑이 서너 번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살 떨리던 감정이 세월에 마모되어 버린 건지 새삼스레 당시를 떠올려 봐도 도무지 가슴이 뛰질 않는다. 알만한 시인들 중에는 마치 연사(戀事)의 경험을 돌려막기 하듯 시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도대체 어떤 성정을 타고 났기에 그렇듯 애절한 사랑의 감정을 여전히 지켜가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풍부한 경험과 구체적 삶의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 쓰려고만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리는 몇 가지 소재들이 있다. 먼저 인천 토박이나 다름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천과 관련한 시를 쓰려고 하면 도통 감흥이 생겨나질 않는다. 내가 자란 서구의(당시에는 북구) 풍광과 그곳에서의 삶의 형태들은 분명 훌륭한 시적 소재들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감동적인 글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앞서도 얘기했듯 바로 사랑에 관한 추억들이다. 워낙 그악스런 시국 속에서 당위적인 삶을 강요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추측해 보긴 하지만 이게 나의 시적 어눌함의 근원적 해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운동과 관련한 글들이다. 나는 분명 황금 같은 대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결혼하고도 한참을 노동운동에 투신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그 시절의 경험을 핍진하게 형상화하질 못하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휩쓸려서 혹은 의무감에 입각해 그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생각해 보지만, 이 부분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 중의 하나다.

 

어쩌면 문제의 원인은 단순한 데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위에서 얘기한 경험과 이야깃거리에 대해서 나 스스로 얼마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천착하려고 했는지 되돌아 보면 아쉽게도 느껴지는 건 부끄러움뿐이다. 정서적 게으름이거나 자만심 때문이 아닐 수 없다. 해당 경험과 이야깃거리들은 그것들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서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생생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기억과 감흥은 희미해지는 게 당연하다. 다시 말해서, 젊고 명민한 시절이라면 그나마 모를까, 이제는 기억력도 쇠퇴하고 눈도 침침해지고 사물에 대한 객관적 시각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장년의 나이가 되어버렸으니 그 시절의 추억들을 추체험하면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버거운 것은 당연할 수밖에나는 시인으로서의 호시절감수성도 예민하고 기억력도 좋았던을 게으름과 자만함으로 탕진해 버린 것이다. 이제야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호명한들 그것들이 제 발로 걸어와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스스로 재구성해 나에게 멋진 시구로 다가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해당 소재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이고 완전히 가슴이 화석처럼 단단하게 경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여 이제라도 한숨과 탄식에서 벗어나 그것들과 관련한 기억들이 더욱 희미해지기 전에 부분적으로라도 살려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그러다보면 뜻밖에도 잊힌 기억들의 조각조각들이 선명하게 맞춰질 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부한 언명을 새삼 되새겨 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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