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부지런하게 움직인 하루, 발품 만세! 본문
엄마는 안경을 새로 맞추기 전 눈 상태를 확인하고 시력을 검사하기 위해 나와 함께 안과를 찾았다. 최근 들어 엄마는 눈이 아프고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아무래도 안경 도수가 맞지 않아 그런 것 같아 안과에 들른 것인데, 정밀 검사를 마친 의사의 말로는, 엄마의 시력은 연세에 비해 좋은 편이고 시리고 눈물 나는 이유는 백내장 기운이 조금 있기 때문이거나 노화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굳이 돈을 들여 안경을 새로 맞춰 봐야 시력 개선 효과가 거의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결국 백내장 치료 안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나왔다. 그래도 병원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가 직접 상태를 말해주니 엄마는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다. 플레시보 효과였을 것이다. 의사의 친절함이 새삼 고마웠다.
안경 값이 굳었다 싶어 근처 피부과에도 들렀다. 엄마의 코 주변에 생긴 쥐젖들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서였는데, 쥐젖 하나를 레이저로 제거하는데 3만 원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엄마는 깜짝 놀라며 “할머니가 생긴 대로 살면 되지 뭔 수술이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머쓱한 표정으로 의사에게 “생각보다 비싸네요. 담에 와야겠어요.”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니까 의사도 “예, 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많이 비쌉니다.”라며 사무적이면서도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차갑지는 않은 얼굴로 대답을 해주었다. 바늘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돌기 하나를 제거하는데 3만 원이나 한다니 역시 의사들은 허가 낸 도둑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부터 검버섯 치료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잠시 보류 중이다. 아무리 아흔 살 할머니지만 엄마도 여성인데, 깔끔한 얼굴에 대한 욕망이 왜 없겠는가. 아마도 나의 형편을 배려하기 때문에 시술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 쪽에서 펄쩍 뛰면서 오버액션을 하는 것이리라.
약 2주 전, 하이마트에서 USB케이블 두 개를 샀는데 그 중 8천 원이나 하는 케이블이 불량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두 정거장이나 되는 매장까지 다시 나가기가 귀찮아 책상서랍 안에 넣어 둔 채 잊고 있었는데, 오늘 건전지를 꺼내려다 문득 그 케이블을 보게 된 순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보관해 놨던 영수증 챙겨들고 매장에 들렀더니 영수증을 확인한 직원은 선선히 케이블을 교환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 확인했더니 제대로 된 제품이었다. 귀차니즘을 이겨내내 발품을 팔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모르고 지나쳐 버렸지만 만약 오늘처럼 귀찮은 걸 조금만 참아냈다면 긍정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내게는 많았을 것이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는 어쩌면 내 운명을 바꿔 놀 만큼 중요한 순간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발품만 팔면 분명 구체적인 이득이 돌아올 것이 명백한 사안에 대해 망설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발품은 단지 8천 원짜리의 효용이 아닌, 내 생활 태도 전반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든 의미 있는 발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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