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날 저녁 '그'의 전화를 받고 난 후.... 본문
묵은 신문과 책꽂이 위를 머뭇거리던 햇살이 물러가자
이내 한여름 습기 머금은 어둠이 찾아왔다.
엎지러진 커피가 티슈에 스미듯 밀려오는 어둠은
메모판 위 압핀에 꽂힌 메모지들을 지우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을 지우고,
몸통을 지우고 곧 윤곽마저 지워버렸다.
잠시 후면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나의 윤곽도
지워질 것이었다.
("이런 건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들은 계속해서 작은 입자로 분해되어
어둠에 섞여들고 있었다.
("정말 이건 아니었는데...")
마침내 어둠은 내 몸속까지 틈입해,
머릿속 생각들과 섞이며 상념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내 몫의 사랑과,
날선 논쟁과
단호한 결별과,
비감한 결의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머리 속에서 아우성쳤다. 나는
그냥 정물처럼 의자에 앉아,
이 혹독한 탈신화(脫神話)의 시절에 내가 지켜야 할 자존과
내가 감당해야 할 실천의 무게를 가늠하며
한참 동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던 거다.
("정말.... 정말, 이런 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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