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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이별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2009-02-06-금, 맑음) 본문

일상

이별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2009-02-06-금, 맑음)

달빛사랑 2009. 2. 6. 14:18

 

 

고려가요 '가시리' 전문

    

[현대어 해석] 서경(평양)이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중수(重修)한 곳인
(새로 닦은 곳) 중수한 곳인 소성경(小城京-작은 서울)을 사랑합니다마는
임을 이별할 것이라면
(임을 이별하기보다는) 임을 이별할 것이라면 차라리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라도
사랑만 해 주신다면 울면서 따라가겠습니다. |
고려가요, '서경별곡' (1)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예나 지금이나 이별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저마다의 사랑에 쏟아부었던 정념이 크면 클수록 감내해야 하는 이별의 아픔도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문학 작품을 통해서 확인하는 이별의 모습들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다. 그것은 일단 시적 화자의 기질과 해당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테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문학적 진정성이란 항시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일단 이별을 대하는 첫 번째 유형인 <가시리>를 살펴보자. 아마도 위에 제시된 세 유형 중 가장 처절하고(?), 솔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버리고 가십니까'라는 구절 속에 담긴 시적 화자의 절절한 슬픔을 생각해 보라. 그야말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구질구질해 보여 행여 가시는 임에게 더 큰 미움을 받게 될까 두려워 이내 붙잡아 두고 싶은 맘을 포기하고 마는 시적 화자, 참으로 인간적이다. 소심하지만 속 깊은 사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쿨(cool) 하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모습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거.^^

 

둘째, <서경별곡>의 경우다. <가시리>와 동시대에 불린 노래지만, 시적 화자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일단 이별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스토커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사랑만 해 주신다면' '길쌈하던 베'(여성 화자임을 알 수 있다)를 팽개쳐 버리고, 다시 말해 생업을 포기하고서 임을 따라나서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울며 울며' 말이다. 어찌 보면 오버액션의 극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랑을 위해선 부모형제, 가족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비장한 결의가 엿보인다. 오늘날로 따지면, 헤어질 바엔 사랑의 도피행도 서슴지 않고 실행하겠다는 당돌한 태도 아니겠는가?

 

셋째,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진달래꽃>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별을 가정하고 있다. 머잖은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이별의 조짐을 읽었기 때문일까? 가시는 임을 위해 꽃을 뿌려주겠다는 행위는 아마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떠나는 마당이지만 앞길을 축복해 줄게'라는 <축복>의 의미와 '너에게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뿌려진 꽃(나의 사랑)을 짓밟고 가기야 하겠어?'라는 <만류>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행위다. 물론 '축복'이든, '만류'든 그 기저에는 임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겠지만 말이다. 속으로는 무척 슬프지만, '간다고? 그래 알았어, 잘 가!'라는 반어적 모습을 보이는 화자. 어찌 되었든 외형적으로 상당히 쿨(cool)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자존심 강한 여성들이 대체로 이 유형에 속하지 않을까. 떠나는 임을 보내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은 깐깐한 자존심……^^

 

지금까지 경험했던 이별의 순간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음…… 말 그대로 '그때그때 달랐던 것' 같다. 어떨 때는 연민에 호소하며 '가시리'의 화자처럼 처절하게 붙잡아 보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서경별곡'의 화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에 올인할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달래꽃'의 화자처럼 쿨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확실히 소심한 에이형 남자니까.^^ 가끔은 쿨하게 보이려고 노력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러한 행동의 진정한 의도는 늘 상대방에게 '쟤, 무척 가슴 아플 텐데, 왜 저렇게 태연한 척하는 거지. 내가 너무 했나. 생오버를 하고 난리네.' 하는 생각을 하게 하려는 앙큼한 속셈(?)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이별을 대하는 특별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닌 듯싶다. 그저 많이 아프고, 많이 외롭고, 많이 힘에 겨워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아픔이 치유되는, 뭐 그런 고전적이면서도 일반적인 과정을 겪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별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별 초기에는 영혼의 황폐함을 속수무책으로 느끼지만, 그것을 나름 극복했을 때는 업그레이드된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내면을 업그레이드하려고 일부러 이별을 경험하는 그런 바보는 되기 싫(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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