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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세월이 지나니 가전들도 하나둘 고장 나기 일쑤다. 에어컨, 냉장고에 이어 이번에는 세탁기다. 에어컨과 냉장고는 워낙 오래 사용해 온 가전이라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즉시 교체했다. 고칠 수는 있었지만, 구형이라서 전기도 많이 먹고 덩치도 컸기 때문이다. 세탁기는 2018년도에 구매해 올해로 7년째 사용 중이었다. 구매 당시에는 이 모델(WA17 M7550 KP)이 기능이나 세탁조 크기 면에서 가장 메이저급이었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이불 세탁이 큰 문제였는데, 이 세탁기는 17kg까지 세탁할 수 있는 대용량 전자동 세탁기였다. 정말 편하게 잘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작년 가을, 전면 조작부 터치패널이 고장을 일으키더니(교체 비용 19만 원), 어제부터는 헹굼과 탈수가 무한반복 되고, 지나치게 큰 ..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쳤다. 덕분에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나흘간의 연휴가 생겼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밀린 일하고 청소하고 낮잠 자기 딱 좋은 연휴다.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른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을 생각하며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쓸쓸한 건 아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주었던 마음의 상처를 지금 아이에게 그대로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없고,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오늘 같은 기념일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다. 다만 종교는 변질됐고 아이들은 되바라져 예절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오늘 같은 기념일이 더욱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같은 기념일이 본분 잊은 종교계나 욕심 많은 아이나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날이..

생각해 보면, 아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늙고 변하고 사멸해 간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빠르다’라는 속도감은 상대적이다. 하루 24시간, 1시간 60분, 1분 60초인 건 누구에게나 똑같다. 다만 같은 하루지만 누구에게는 길게 느껴지고 누구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 있는 건,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괴로운 상황이라면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느낄 것이고 즐거운 상황이라면 시간이 짧게 흐른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그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아서, 시간 아까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가지 않는 시간을 탓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

어제 인천시민공원에서는 봄날 같지 않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인천5.3민주항쟁' 39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후가 되면서 비가 그쳐 행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알다시피 80년 광주에서 피워 올린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항쟁의 불꽃은 6년 후, 인천 5.3항쟁을 통해 지역과 계층을 넘어 더욱 증폭되었고, 이렇게 크고, 깊고, 넓어진 항쟁의 불꽃은 이듬해인 87년 6월 항쟁으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이 자랑스러운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를 발본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완성하여 그것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 이것이 항쟁의 도시, 민주주의의 도시, 독재가 두려워하던 도시 인천의 자존이자 사명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세상은 더럽혀진 말과 음모로 가득하다. 법관들은 비밀종교의 사제처럼 인민 위에 서서 인민을 조롱하고, 그들이 법정에서 풀어놓은 말들은 사교(邪敎)의 주문처럼 저주와 증오, 음모와 살기를 띠고 법정 밖을 나와 바이러스처럼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한 참언(讒言)과 명백한 살의를 띤 말들의 난장 속에서 내 소중한 봄날의 오후도 지는 벚꽃처럼 저물어 버렸다. 요즘 몸 상태가 늘 개운하지 않다. 질 좋은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컨디션은 지속적으로 나빠질 것이다. 절식하고 운동하고, 탄수화물 끊고, 유튜브나 영화 감상 등 영상 시청 시간도 줄여야 한다. 언제나 나는 해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그 해법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려면 행해야 한다...

오늘은 135주년 노동절이다. 산재 발생률과 비정규직 비율과 같은 노동자의 처우를 생각하면 여전히 우리나라는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녀 노동자의 근무 조건과 임금 차이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노동 시간 위반, 임금 미지급, 폭행 및 폭언 등 현장에서의 노동법 위반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바로 노동자다. 그들이 만든 집에서,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그들이 만든 물건을 사용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노동자가 기계를 멈추고 생산을 중단하면 세상 또한 멈추고 우리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만드는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외되거나 억압받는 삶을 살아왔다. 이 존재의 모순은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오늘 백삼십오 번째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

일찍 일어났으나 말썽 부리는 세탁기 점검하느라 오전을 다 날리고, 점심시간쯤에 느지막이 출근하다가 단골 미용실 앞에서 계획을 바꿨다. 전형적인 MBTI-P형 속성이다. 손님이 한 명도 없으니 기다릴 것도 없다고 생각해 무작정 미용실에 들어가 파마(펌)를 새로 했다. 머리를 말고 파마약을 바른 후, 파마가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성 손님 두 명과 여성 손님 한 명이 다녀갔다. 한 시간 후 머리를 감고 보니 지난번 보다 웨이브가 심했지만, 보기 나쁘지는 않았다. 파마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렸으므로 출근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청소하고 빨래했다. 세탁기는 여전히 툴툴거렸다. 저녁에는 누나가 생닭을 사 와 닭백숙을 끓여주었다. 닭백숙은 다른 양념 필요 없고 오로지 마늘만 넣고 끓여도 맛이 있다. 몸에도 좋..

타성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힘센 타성을 이겨보려고, 결심한 걸 절대 잊지 말자는 결심까지 한 적 있다. 그러나 자주 진다. 오늘도 결심과는 달리 점심에는 라면, 저녁에는 냉면을 먹었다. 술 마신 다음날의 루틴이지만, 그만큼 몸에 밴 습관(타성)은 벗어나기 힘들다. 나쁜 걸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겠지. 근데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다고 타성과의 싸움에서 나의 의지가 늘 패배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겨하지' 하고 결심하는 거지, 맨날 패배하면 무슨 맛에 결심하겠나. 11시쯤 유 박사가 전화해 "형, 해장해야지" 했다. 낮술 마시자는 것이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는 곁을 주면 너무 자주 연락한다. 외롭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부담스럽다. 그나마 오늘은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다 전..

컨디션이 안 좋아 쉬려다가 점심시간쯤에 출근했다. 오전에는 보운 형이 부탁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느라 시간을 보냈고, 11시쯤에는 작가회의 사무처장인 옥 아무개 시인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긴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하소연의 핵심은 현재 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 모 시인의 고압적인 태도와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조직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다른 문학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조직을 깎아내리며 험담하기도 하고, 회원의 동의나 이사회의 판단이 필요한 중요한 안건조차 자기 맘대로 결정해 버리는 전횡을 일삼고 있다고 했다. 사실 지회장의 독불장군식 사업작풍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여러 채널을 통해 들어왔던 터라서 새로울 건 없었는데, 다만 이사 중 상당수가 그의 행태에 반기를 ..

‘게드 전기 : 어스시의 전설’을 다시 봤다.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의 작품인데, 개봉 당시에 이미 졸작으로 소문난 작품이라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선입관 접어두고 다시 봤는데, 오히려 왜 졸작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같은 지브리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을 텐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연출력의) 갭이 왜 이리 큰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예술적 감수성은 쉽게 유전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원작자인 어슐러 K. 르 괸 여사의 평이나 아버지인 하야오조차 야박하게 평가한 걸 보면 확실히 범작이거나 졸작인 게 분명하다. 일단 주인공의 행동은 물론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개연성이 없거나 회수되지 않는 떡밥이 많았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