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4-27-일, 맑음) 본문
‘게드 전기 : 어스시의 전설’을 다시 봤다.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의 작품인데, 개봉 당시에 이미 졸작으로 소문난 작품이라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선입관 접어두고 다시 봤는데, 오히려 왜 졸작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같은 지브리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을 텐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연출력의) 갭이 왜 이리 큰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예술적 감수성은 쉽게 유전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원작자인 어슐러 K. 르 괸 여사의 평이나 아버지인 하야오조차 야박하게 평가한 걸 보면 확실히 범작이거나 졸작인 게 분명하다.
일단 주인공의 행동은 물론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개연성이 없거나 회수되지 않는 떡밥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답돌이(답답한 캐릭터)가 되고, 그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은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잖은가. 그런데도 그 사건의 배경이나 부친 살해 이유가 서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아버지인 하야오가 영화 관람 1시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까. 물론 프로듀서이자 하야오의 동료였던 스즈키 토시오는 하야오가 영화 관람 중 일어선 것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였다고 대외적으로 우겼댔지만...... (토시오의 말은 이후 하야오와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뒤집어진다) 다만 한 가지, OST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게드 전기’가 망작이 된 이유는 애초에 총감독인 고로가 애니메이터 지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조경이나 건축설계를 하던 인물이었는데, 그동안 하야오의 까탈스러운 완벽주의로 인해 진행이 더뎠던 지브리 박물관 건설을 고로가 제대로 완공한 걸 보고 프로듀서인 스즈키가 ‘저 정도 실력이면 애니메이션도 잘 만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작품 감독을 맡겼던 것이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드는, 준비되지 않은 감독에게 대형 프로젝트를 맡겨버렸으니, 최악의 결과물이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도대체 건물 잘 짓는 것과 애니 감독 잘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무모한’ 판단을 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다만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걸작이든 망작이든, 이런 종류의 판타지 애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묘하게 설렌다. 그러한 설렘이 깊어지면, 애니 내용과 무관하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슬픔과 갈등이 없는 ‘좋은 나라’에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진다. 하야오의 작품들과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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