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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선거를 앞둔 세상의 잡설과 비어들을 멀리하고 흐린 여름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구름이 하늘에 그림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세상은 시끄러워도 하늘은 찌푸린 얼굴조차 아름다웠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서 문을 자주 열어 환기했다. 오늘도 한때 비가 왔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종일 후배들에게 전화가 왔다. 식사 준비 중이거나 식사 중일 때여서 받지 않았다. 흐린 주말,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주말이었다. 대체로 평일 비번 때 루틴을 그대로 유지했다. 밥 먹고, 운동하고, 유튜브 보고, 책 읽거나 영화 보고, 그러다 졸리면 낮잠 자고, 일어나 뉴스 보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자주 테라스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건너편 메밀냉면 집으로 드나드는 손님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들어오곤..

한낮에는 날이 맑았는데, 오후가 되면서 점점 흐려지더니 저녁 무렵에는 비가 내렸다. 여름을 향해 달리는 비답다고 느꼈다. 그게(‘여름을 향해 달린다는 것’) 어떤 느낌(혹은 의미)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테라스에서 비를 보는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최근 나는 특정한 현상에 관한 나의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사소한 모든 것까지 설명이 필요한 세상에서 평생 살아왔는데도 그렇다는 건 내 삶에 모종의 변화가 찾아온 탓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전에 채소 사러 갈 때는 날이 좋았다. 살짝 더웠지만,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바람은 초여름 밤비(night rain)의 전초병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저녁에 비의 본대(本隊)를 몰고 이곳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알았다. ..

점심 먹고 돌아오니 낯선 분 두 분이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그분들은 얼마 전 내가 교정과 윤문하고 다인아트에서 출간한 수필집의 주인공 한모 신부 내외였다. 드디어 책이 출간된 모양이었다. 그분들은 내가 이름을 밝히자 표정이 환해지며 "아, 문 선생님이세요? 글을 너무 깔끔하게 잘 다듬어주셨어요. 고맙습니다"라며 웃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막 출간한 책을 꺼내 직접 서명한 후 내게 건넸다. 교육감에게도 직접 전해주고 싶어 했으나 오늘은 결재와 상담 일정이 저녁까지 꽉 차 있어 도저히 시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일부터 1박 2일, 시도교육감 회의 참석하러 출장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맘으로 비서실에 전화했더니 여비서들은 "죄송해요, 특보님, 오늘은 일정이 너무 타이티 해서 중간에 손님 만..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씨가 구월동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구경하러 갔나, 점심시간 청사 근처 식당들은 다른 때보다 무척 한산했다. 유튜브 여러 채널에서 그의 유세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화면상으로는 제법 많은 시민이 운집한 것으로 보였다. 아직 이재명 씨는 유세 현장인 구월동 로데오거리에 나타나기 전이었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현장의 한 시민은 ‘이재명 씨가 인천 계양구 국회의원이므로 그의 원적지(원래 고향)와 상관없이 인천의 인물이 대선후보가 된 것이니,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결국 그것은 인천의 자랑이 될 것’이라며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게 어찌하여 내가 사랑하는 인천의 자랑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선거판에서는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헤드폰을 샀다. 이미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이어폰을 3개나 (삼성 버즈 2 프로, 애플의 아이팟 2세대, 아이팟 프로) 가지고 있는데도 굳이 헤드폰을 구매한 이유는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허영심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예전에 소니 유선 헤드폰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삼성, 젠하이저, 아이리버, 파나소닉 등 다양한 이어폰을 사용해 봤지만, 그 어느 이어폰도 헤드폰 음질을 이기지는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과 경탄할 만한 음질을 구현한 헤드폰이 많이 나와서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디자인 또한 요즘 젊은 세대의 기호에 맞게 예쁘게 나와서 지금은 헤드폰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나는 ..

인간의 존엄과 문화적 역량을 보장하고, 도시의 문화유산과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며 출범한 ‘인문도시연구소’는 앞으로 인천과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와 연구방법론 체계화, 인천과 도시에 대한 정보·연구 성과 축적과 공유, 도시 인문학자와 관련 연구기관과의 협력 등을 주요 추진 사업으로 제시했다. 인문도시연구소는 또한 발족 선언문을 통해 산업화, 세계화 속에서 확장된 현대 도시는 시민들의 삶의 소외, 불평등, 환경 파괴, 문화 훼손, 지역 불균형, 문화행정의 관료화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생태주의, 인문주의의 새로운 가치연대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연구소 측은 창의적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실천 방법으로 ①형식적 민주주의를 깊은 민..

여당 후보 김문수 씨가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망월동 묘역에 들렀던 모양인데, 일부 시민들이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한 김 씨의 참배는 광주 민주 영령들을 모독하는 것이자 5월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참배를) 반대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럴 만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근간부터 망가뜨린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니, 그 또한 국정 혼란에 일정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한다면서 국민에게 사과하기를 거부한 한 인물이다 보니 광주 시민들은 김문수의 참배를 거부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행위가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앞다투어 보여주는 쇼맨십이거나 사진 촬영용 참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미친 목사 전광훈..

80년 광주를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 난다. 당시 17살 소년이던 나는 이제 60대가 되었다. 비록 당시에는 광주의 실상을 몰랐으나 대학 시절, 비어처럼 소문으로만 떠돌던 광주의 실상을 접하고 난 후,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건 자본의 세상에 편입하기 위해 책을 읽고 수업을 듣던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시신들, 태극기로 덮인 즐비한 관들과 오열하는 노인들, 무장한 시민군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공수부대원들의 살기 띤 눈동자 등 컬러 TV 화면에 펼쳐진 그 살풍경한 장면들을 보는 순간 내가 생각하던 나라, 내가 꿈꾸던 미래는 사라졌다. 경악과 공포에서 시작해 분노와 오열, 섬뜩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스무 살 시절의 그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경찰과 모든..

예사롭지 않은 빗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처럼 늦봄 아침, 침대에서 듣는 장한 빗소리는 내게 축복이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는 이런 날은 종일 마음이 부풀어 지내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비의 기세를 확인한 후, 부리나케 주방을 건너가 테라스 문을 열었다. 빗물 소리가 더욱 요란했다. 듣기 좋은 백색소음이었다. 한동안 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방으로 돌아와 침대를 정리하고 양치를 한 후, 삶은 달걀 하나와 토마토를 우유와 함께 먹은 후, 한 시간 동안 실내 자전거를 탔다. 이 시간은 (자전거 위에서) 뉴스를 보거나 SNS를 통해 세상과 내 지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동시에 나의 안녕을 고마워하는 시간이다. 대선을 앞둔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큰 차이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당연..

언제부터인가 속이 빤히 읽히는 사람들을 봐도 기분 나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와 같은 유형, 즉 자신의 솔직함 때문이 아니라 의도가 너무 강력해, 돌려 말하려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속을 읽히고 마는 미숙한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면 짐짓 모르는 체하며 골려주고 싶은, 고약한 악취미가 생기거나 상대의 말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기기 때문이다.❚오늘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 S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초반에 잠깐 “잘 지냈어?”와 같은, 그야말로 진부한 인사,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간 보기용 안부 묻기가 이어지다가 잠시 후 전화를 건 본래의 목적에 해당하는 말이 나왔다. “이번 토요일, 우리 딸이 결혼해”. 그런데 의외였던 건, 속으로 ‘그거였어?’ 하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