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밉지 않은 내 루틴 파괴자 (6-28-토, 비 오고 저녁에 갬) 본문
오후에 낮잠 자고 있을 때, 장의 연락을 받았다. 시를 두 줄 썼는데 뒷부분을 이어가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는 둥 새 책을 주문했는데, 지금 막 도착했다는 둥, 뭐 그리 특별한 용건은 없고, 그냥 블라블라블라! 결국 술 먹자는 얘기를 돌려 돌려 말하기에 내가 시간 장소를 정했다. 사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배도 고프고 해서 고기나 먹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전화가 온 것이다.
6시쯤, 장을 만나 집 근처 단골식당 강원정육점에서 가서 오겹살을 먹었다. 이곳은 1인분이 다른 곳과 달리 300g이다. 그래서 내가 3인분을 주문하자, 장은 "아, 형, 너무 많을 거 같은데요" 했다. 하지만 나는 배도 고프고, 목살도 오랜만에 먹는 것이라서 그냥 주문했다. 결국 장의 말이 맞았다.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먹었으나 배가 불러 서너 점의 고기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약간 남을 만큼 시키는 걸 좋아한다. 2인분을 주문했다면 무척 아쉬워하며 다른 부위 고기를 추가 주문했을 것이다. 3인분 주문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이자카야 '연꼬치'에서 2차로 닭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나는 매번 이곳을 지나치면서도 별로 관심 두지 않았는데, 장은 우리 동네 올 때마다 이곳을 눈여겨봐 뒀는지 이 집 한번 오자고 강권했다. 오늘 와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단 안주가 싸고 맛있었다. 모양도 예뻐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실제로 손님 대부분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또한 매우 힙한 곳이어서 그만큼 자리 잡기도 힘든 집인 모양인데,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창문 쪽 2인석이 비어 있었다. 우리가 자리 잡고 난 후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들어왔고, 이후에는 빈자리가 없어 연락처를 남긴 후 웨이팅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안주와 술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손님이 많았는데, 손님 중에 아저씨들은 우리뿐이었다. 그것 또한 눈치가 보였다.
손님들은 팔꿈치가 닳을 만큼 조밀하게 주방을 바라보며 주욱 알자로 앉아서,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가 다 들릴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하하 호호 웃으며 자신의 일행들과 용케 대화했다. 그들에게는 남의 말은 거르고 자신의 말은 함께 온 일행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필터 장치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게 신기했다. 아마도 나는 창가 쪽 따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었다면 그냥 그곳을 나왔을 것이다.
장은 벌컥벌컥 잘도 마셨지만, 왠일인지 나는 술이 잘 안 들어가, 겨우 맥주 2잔 마시고 일어섰다. 오디오 구경하고 가겠다며 나와 함께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던 장은 슈퍼가 보이자 얼른 들어가 투게더 아이스크림 2통을 사들고 나왔다. 그는 내가 아이스크림 중독이라는 걸 알고 있다. 고맙기는 했지만, 이번 주에는 이미 한계 섭취량을 초과한 터라서 (나는 술과 아이스크림의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있다. 술은 1회, 아이스크림은 1통) 고맙기는 했지만, 난감하기도 했다. 물론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은준을 보내고 이미 한 통을 먹었다. 돼지처럼 이것저것 많이도 먹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돼지고기도 둘이서 900g을 먹었네) 졸리다. 아무튼 장은, 밉지 않은 내 일상의 루틴 파괴자이자 다이어트의 적이고 간 건강의 치명적인 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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