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조촐한 송년회, 종일 비는 내리고 (12-14-목, 흐리고 비) 본문
아침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예보에 의하면 내일까지 이어질 것이고, 자정을 넘어서면 비는 눈발로 바뀔 것이다. 점심에는 임플란트 진료받으러 치과에 들렀다. 원장은 이번에 만든 임시 치아를 무척 맘에 들어하며 "맞아, 바로 이거야. 이제야 내 맘에 들게 만들어졌네요" 했다. "입을 살짝 벌렸을 때 대여섯 개의 이가 보여야 예쁘거든요. 윗니를 약간만 더 내릴까요? 그래야겠다." 그러면서 거울을 들어 내게도 치아 모양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보기 나쁘지 않았다.
한동안 임시 치아를 착용하고 생활해 본 후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으면 임시 치아의 형태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임플란트 구조물을 제작하고 그것을 임시치아와 교체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다. 자세한 건 주치의인 원장만 알겠지만, 내 생각에는 얼추 완성 단계의 8부 능선은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시술을 시작한 지 이번주로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아무튼 원장의 노력과 실력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환자와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병원과 의사를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시술비는 다른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비쌌지만, 확실하게 진료하여 뒤탈 없게 해주는 게 내게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언젠가 스케일링을 해주던 위생사 하나가 "문계봉 님은 패션 감각이 남다르신데, 혹시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어오길래 "글 쓰는 사람이에요" 하고 슬쩍 대답해 준 적이 있는데, 이후에 나와 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원장에게도 말해주었지, 오늘 원장은 나에게 "문계봉님은 시인이셨어요? 저도 학창 시절 제법 시를 좀 썼던 문학소녀였답니다." 하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치료도구가 입 안에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는 없고, 그저 고개를 살짝 움직여 공감의 뜻을 표했다. 약간 부끄러웠지만 잠시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오늘도 임시 치아는 더 나은 미관을 위해 다시 기공소로 보내졌다. 다음 주 수요일 좀 더 나에게 어울리도록 손을 본, (그래서 최종적인 임플란트 구조물과 형태가 가장 유사한) 임시 치아를 만나게 될 거다. 앞으로도 원장이 나를 진료할 때, 인형놀이 하듯 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형을 가장 예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인형의 주인처럼.....
저녁에는 갈매기에서 민연 동지들 서너 명과 조촐한 송년회를 했다. 올해는 참석 인원이 없어서 무척이나 썰렁했다. 지리산에 있는 황선진 선배가 화상전화로 연락해 와서 너무 반가웠다. 그래도 해 바뀌기 전에 얼굴은 본 셈이다. 공연 포스터를 들고 갈매기에 들렀던 혁재가 내가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별실로 인사를 왔다. 그냥 보내기 서운해서 잠깐 앉혀놓고 함께 술 마셨다. 한 시간쯤 지나 신포동에 가야하는 혁재를 배웅하러 나갔다가 구례로 낙향한 조 아무개와 그의 남편 광석 선배를 만났다. 그들 역시 송년회 모임 때문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민중연합 동지들은 갈매기를 나와 노래방으로 몰려갔고 나는 그냥 집으로 가려고 큰길로 나왔다가 작가회의 명남과 혁신을 만났다. 함께 전철 타고 가다가 시청역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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