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비님 오신 날, 도시는 흠뻑 젖고 (04-05-수, 종일 비) 본문
시든 도시가 생기를 되찾을 만큼 많은 비 내렸다. 비가 그치면 먼지로 얼룩졌던 도시의 얼굴도 조금은 환해지겠지. 또 목말랐던 나무들은 뿌리와 피부를 긴장시켜 내리는 빗물을 흠뻑 빨아들였겠지. 눈처럼 하얗게 쌓여 있던 벚꽃 잎들이 흐르는 빗물에 속절없이 떠갔다. 점심 먹으러 중국집 ‘취홍’ 쪽으로 내려갈 때는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져 나의 작은 우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 이미 어깨와 바지 아래가 다 젖었지만, 기분 좋았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너무 좋아서 일부러 우산을 빙빙 돌리며 장난쳤다. 비서실장의 골프 우산 위에서는 빗물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신기했다. 비싼 황제짬뽕 국물까지 다 마시고 식당을 나왔을 때 비는 더욱 거세져 있었다. 청사 앞 잔디광장 곳곳에는 작은 물웅덩이들이 생겨났다. 비는 오후 2시쯤 잠깐 숨을 고르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3시가 지나면서 다시 보슬비로 내렸다. 비서실장 따라서 옥상에 갈 때마다 고인 물을 밀대로 여러 번 밀어냈다. 오랜만에 내린 비는 내 오락거리가 되고 장난감이 되었다. 장화가 있었다면 빗물 위를 찰방거리며 돌아다녔을 거다. 예보에 의하면 비는 내일까지 이곳에 나와 함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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