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빗물은 떨어진 꽃잎을 기억할 거야 (04-06-목, 비) 본문
엊그제 만난 선배는 물었다. “문 시인, 왜 ‘우리(we)’ 안에 당신은 없는 거지?” 글쎄, 그 ‘우리’가 어떤 무리인지 알 수 없지만, 없는 데는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쎄요, 그게 뭐 하는 '우리'인데요? 누가 주도하는 거지요?"라고 물었더니 "○○야. 우리 중에 문 형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내가 초대할까?" 했다. 웃으며 사양했다. 나는 오히려 그 '우리' 안에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모임을 만드는 일, 만들어진 모임 안에 들어가는 일 모두 불편하다. 경험에 의하면,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급조된 모임은 대개 건강하지 않았다. 물론 늘 명분은 건강하지 못한 흐름을 차단하고 올바른 문화예술과 그 담지자들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오래전에 이미 폐기된 진영론에 다시 기대어 그 폐해를 양산하는 데 일조한 건 정작 우리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후배들의 '추앙'에 부화하고 뇌동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선배들이 나 말고도 많았다는 것인데, 어쩌겠는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이 칭찬인데, 판단력이 흐려진 늙은 사내들 몇몇 '춤추게' 하는 것쯤이야 뭐 대수였겠는가.
종일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비는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쳤다. 귀가 후에도 비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보슬비로 내렸다면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비 내리는 동안에는 잠시 공기가 좋아졌으나 비 그치니 이내 '나쁨'으로 상태가 바뀌었다. 비바람에 떨어진 꽃들이 아스팔트 위에 무늬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내일을 여는 작가'로부터 시 청탁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의 청탁이다. 써 놓은 시가 없으니 새롭게 써야 한다.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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