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6월 17일 금요일, 엄마가 보고 싶다 본문
엄마의 삶과 죽음에서 비롯한 상실과 황망함, 낯설어진 익숙함 혹은 익숙해진 낯섦, 말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는 마음, 말할 수 없으나 말해야 하는 마음, 엄마의 부재가 불러온 일상의 변화 등에(을) 주목하며(해석하며), 어쩌면 무연(無緣)해 보이는 '당신'까지도 관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끝내는 온 우주에 마음의 파장을 보내고 있는, 엄마에 관한 이보다 가슴 먹먹해지는 정치(精緻)한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 엄마로 시작해서 엄마로 끝나는 두툼한 이 시집을 읽어가면서, 나도 시인의 부름에, 그녀와 엄마의 교감이 발생시킨 파장에 몸이 떨려, 자꾸만 엄마가 생각나고, 울 엄마가 보고 싶어 자주 시집을 덮곤 했다. 날 닮은 여름 얼굴에 주름 서너 개 그어놓은 오후......
6월의 길 잃은 바람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게으른 신경들은 쉽게 무장해제 당했고, 나는 한동안 내가 아닌 나로 살아야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쓸쓸해졌다. 쓸쓸함은 내게 운명 같은 것이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떠한 느낌도 없이 몸속의 바람을 견딘 것은 아니다. 바람은 신경을 무력화하고 얼굴의 빈틈마다 조밀하게 들어찼다. 몇 번의 비가 다녀갔다. 기다리는 비였기에 거울 밖의 나는 내리는 비를 한참 바라보며 조금은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거울 속의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비웃었다. 몸속의 바람은 꼬박 열흘을 점령군처럼 내 신경을 유린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물러갔다. 신경의 풀 죽은 줄기 아래 은밀하게 숨어서 끝끝내 빠져나가지 않은 바람은 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 흩어진 호흡을 모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밤마다 자주 깨어 얼굴을 매만지고 손가락으로 풀 죽은 신경들을 불러내곤 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견디는 것이었으므로 몸에 남은 바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6월의 반이 이미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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