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6월 20일 월요일ㅣ시집『골령골』(어린작가, 2022)을 읽다 본문
혹시 빈집에 들어설 때마다 지레 겁먹은 내가 괜스레 소리치고 어둠을 향해 대화를 하듯 혼자 큰소리로 중얼거릴 때, 실제로 그 어둠 속에서 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 아니니? 말 붙일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나를 기쁘게 해 줄 몇 개의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책상 아래이거나 식탁 의자에 앉아서, 소파에 기대거나 냉장고 옆에 숨어서, 혹은 열린 방문 뒤에서 조마조마하며 나를 기다렸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지레 겁먹고 어둠 너머로, 아니 어둠을 향해, 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냅다 소리를 지른 건 아닌지. 한쪽의 설렘이 한쪽의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거야.(새벽 3:21)
김희정 시인의 시집 『골령골』(어린작가, 2022)은 읽어나가기가 무척이나 곤혹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시집입니다. 도대체 이 땅의 장삼이사들에게 국가와 공권력이란 어떤 존재일까라는 의문에서부터 눈먼 이념은 얼마나 총칼보다 잔인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3일 후인 1950년 6월 28일, 군경은 대전형무소에 수감 돼 있던 복역수, 예비검속자, 보도연맹원, 민간인 등을 집단 학살했는데, 이 '피의 살육제'에서 죽어간 이들은 확인된 것만 해도 얼추 3,200여 명(7천여 명으로 추산하는 기록도 있음)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학살의 사실은 철저하게 은폐되었다가 1999년 12월, 미국의 미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인 골령골에 잠들어있던 원혼들이 50년 만에 자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김희정 시인의 시집 『골령골』은 바로 이러한 비극을 시로써 형상화해 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집은 잊혔던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반성적 기록이자 망자들의 한을 위무하는 진혼가입니다. 스스로 영매가 되어 그 혹독한 시간을 마주하며 원혼들의 넋두리를 감동적인 시로 재구성한 김희정 시인의 노력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한편 한편이 그 자체로 자기 완결구조를 갖는 서정시이면서 그것이 모여 역사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서사로 완결되는 시집 『골령골』은,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따위의 정치’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가 입술을 깨물며 읽어야 할 시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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