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4월 29일 금요일, 로미 연락하다 본문
아침에 많은 비 내렸다. 어제 술을 마셨지만,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청사도 금요일이면 다른 날보다 한적하다. 교육감이 부재한 상황은 직원들의 근무 태도를 다소 느슨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탈법은 아니다. 사용하지 않던 연월차를 사용하거나 간혹 장기 휴가를 신청하는 직원들도 눈에 띄지만, 그 모든 절차는 모두 직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이다. 다만 수장이 없는 조직의 긴장감은 수장이 있을 때보다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뭔지 모를, 아니 뭔지 알 것 같은 느긋함이 청사를 지배하는 중이다.
오후에는 로미에게 연락을 받았다. 혁재와 둘이서 구월동에 있는데, 컨디션이 괜찮다면 나오라는 것이었다. 컨디션이 그리 좋지도 않고, 밀린 글들이 서너 개 있어 잠시 망설였는데, 로미를 만난 것도 서너 달 된 거 같고, 퇴근 무렵이라 배도 고팠다. 어차피 집에 가도 식사는 해야 해서 함께 저녁을 할 심산으로 로미 혁재 커플을 만나러 갔다. 둘은 밴댕이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자 밖으로 나왔다. “선배님, 무얼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연신 물어오는 로미에게 “갈비나 먹읍시다”하고는 근처 갈빗집으로 향했다. 두어 달 전 수홍 형과 들렀을 때 너무 맛있게 먹어서 인상이 깊게 남은 집이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맛과 기본 반찬에 만족해했다.
갈빗집에 들어가고 한 시간쯤 지나 후배 김병균이 합류했다. 입성이나 표정, 얼굴색이 왠지 모르게 안 돼 보였다.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었다. 재작년 뜨겁던 연사가 깨지고, 마음의 상처도 많았을 텐데, 이후 공모 사업도 열심히 진행하고 연극 대본도 창작하면서 나름 부지런한 일상을 조직한 것 같긴 한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주 칩거하기 때문인지 표정이 어두워 보여 마음이 아팠다. 간혹 우스갯소리를 하며 웃긴 했지만, 이내 다시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가곤 했다. 술에 취하면 자주 공격적으로 변하곤 하는 그의 성격도 사람들이 곁을 주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갈빗집을 나와 민예총 건물 1층에 있는 후배의 술집 ‘꽃술’에 들렀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정치색이 짙은 낯익은 선후배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배도 부르고 로미 씨가 술에 취해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귀가하고 싶어졌다. 거의 1년 만에 만난 병균이만 아니었으면 2차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오늘 회동을 매듭지어야 할 거 같아서 “그럼, 냉면이나 먹고 헤어지자.” 했더니 혁재도 병균이도 “그럴까요.” 하며 반색했다. 하지만 구월동에는 냉면집이 없어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청 근처 ‘사곶 냉면집’엘 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영업이 끝난 게 아닌가. 다행히 바로 앞에 있는 부산밀면 집은 영업을 하고 있어, 9시에는 반드시 나간다는 약속을 하고 서둘러 밀면과 편육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9시까지는 40여 분의 여유가 있었다.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밀면을 먹고, 정확히 9시에 계산하고 나왔다. 모두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하자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할 일이 있어 안 된다고 고사했다. 집까지 사람을 ‘달고 와’ 술을 마시면 이튿날도 하루를 그냥 버리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할 일도 있었다. 아쉬워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도착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30분 후, 병균이와 헤어진 혁재가 전화해 “잘 들어갔어요. 형. 우린 모텔에 도착해 쉬고 있어요. 오늘 고생했어요.” 했다. 괜스레 병균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친구가 큰맘 먹고 나와 한 잔 더 하자는 속내를 비쳤는데 내가 너무 야박하게 거절한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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