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심의서류 검토, 또 검토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본문
두 종류의 심의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살짝 하중을 느낀다. 부서도 다르고 지원액도 다르지만, 공통적인 키워드는 문화와 예술이다. 예술가들은 한결같이 지원이 부족하다고 툴툴대지만 그래도 인천만큼 예술 활동과 예술인에 대해 실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곳도 많지 않다. 예술인 구술사업, 공간 지원 사업, 문화예술 활동 지원 사업, 창작지원금 지급, 정신과 상담, 생활비 저금리 대출, 예술가 보험, 공간 제공(레지던시) 등등 쌍팔년도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지원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꼰대처럼 말한다면, 오래전 예술가들은 배고파도 자존심은 있어서 관의 지원을 바라지 않았다. 아니 바란다고 해도 이루어질 리가 없으니 애초부터 기대를 끈 건지도 모르겠다. 받은 게 없으니 관의 간섭을 받을 일도 없고, 자유로우니 순정한 창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곧 죽어도 예술가로서의 자존은 잃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오히려 관의 지원이 많아진 요즘, 형편은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목숨 걸고 예술 하는 맨주먹 정신은 많이 희석된 거 같다. 게다가 요즘에는 관에서 지원하는 각종 지원금을 따먹기 위한 ‘지원금 사냥꾼들’이 횡행하기도 한다. 그들의 특징은, 일단 카르텔을 형성하고,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서식하며, 기안서를 잘 만든다. 스펙 열거하기를 좋아하고, SNS를 통해 의견 그룹을 만든 후 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올린다. 늘 공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자신들은 편법을 죄책감 없이 사용한다. 그래서 기획서에 열거된 표면적인 스펙들과 작업 내용만 살펴본다면 그들은 공모에서 반드시 선발해야 할 의미 있는 작업자가 아닐 수 없다. 달면 당연히 삼키고 써도 삼키는 원초적인 지원금 사냥꾼을 발본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래서 공모 심의위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정과 투명함의 그물을 촘촘하게 엮어 알맹이를 고르고 쭉정이를 걸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다. 하지만 역할의 중요성이 강제하는 엄중함과 불편부당함은 나름 보람과 긴장된 즐거움을 준다. 나의 꼼꼼한 심의가 공모 현장에서의 잡음을 없애고 공정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창작과는 별개로 인천의 문화예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피곤해도 바로 이러한 보람과 자부심 때문에 눈을 비비며 서류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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