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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심약한 존재의 운명적 비극ㅣ민예총 이사회 본문

일상

심약한 존재의 운명적 비극ㅣ민예총 이사회

달빛사랑 2021. 5. 26. 00:02

 

재미없는 민예총 이사회 하나만 참석하면 오늘 일정은 정리된다.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가 특별한 역할도 없이 단체나 조직에서 직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술단체의 이사라면 모름지기 단체의 비전과 현재 활동에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당면 시기 단체가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유력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데 나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예총에 전혀 애정이 없는 건 아니다. 민예총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감당해야 할 자신만의 역할이 존재한다. 현재 자생적인 사업보다 지원사업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요즘, 자력으로 진행하든 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든 양질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과 그걸 바탕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건 문화예술단체의 고유한 임무와 역할이라 하겠다. 민예총은 현재 그러한 임무와 역할을 일정하게 감당하고 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나는 다만 나의 능력과 관심 부족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민예총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단 나는 조직이라는 인위적인 결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않는다’라기보다는 ‘않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태생적으로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오랜 기간 조직 생활을 해오면서 특별히 조직원들과 부딪치지도 않았고, 조직의 규율이나 운영 원칙에 거부감을 가졌던 적도 없다. 그때는 가슴속에 여전히 붉은 신념이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힘이 들 때면 큰일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필연적인 고통이라 받아들였다. 희생과 헌신이란 단어를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이타적인 계획에 내 생활을 기꺼이 투여했다. 50대에 들어서서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점점 체력도 약해지고 ‘도대체 그동안 이룬 게 뭘까’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갑자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일모도원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조급함은 어떤 성취에 대한 갈증이다. 갈증이 크면 클수록 연줄연줄 얽혀 있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 피로감을 느꼈다. 신념은 무뎌지고 시행착오는 쌓이고, 무엇보다 반복된 실패와 오류 속에서도 보존해야 할 합리적 핵심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지리멸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의무감이나 책임감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속한 조직과 얽힌 관계들에 나는 큰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방관자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방관자일망정 여전히 조직의 규율이 작동하는 범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조직과 후배들은 나의 변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많은 직책과 일거리가 나를 떠나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다. 현재도 일상생활에 물리적 부담을 받을 만큼 많고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부담은 너무도 크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재미없는 일을 의무감으로 하려다 보니 내 모습이 얼마나 청승맞은지 모르겠다. 난 앞으로도 이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성격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 성정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계속 나는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툴툴대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감당할 것이다. 심약한 존재의 운명적 비극이다.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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