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진안① : 후배 집에서 본문
아침부터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비가 내렸다. 새벽녘에 창문 밖으로 “번쩍!”하는 불빛이 보여 무슨 일인가 하고 깨어났는데, 뒤이어 들리는 천둥소리, 번갯불이었다. 평소처럼 5시쯤 깼다. 오늘은 진안에 있는 후배 집을 방문하는 날, 간단하게 짐을 쌌다. 2박 3일간의 일정이지만 이것저것 싸다 보니 가방이 제법 두툼해졌다. 곰탕 국물과 김치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채 7시가 되지 않았다. 뉴스와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9시쯤 이번 진안 여행을 제안한 창길이가 집 앞에 차를 대고 전화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비가 만만찮게 내렸다. 도림동 화원에서 혁재를 픽업하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도로는 무척 붐볐다.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창길이의 운전 실력은 믿을 만했지만, 빗길이라서 가속을 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몇 번이나 천천히 갈 것을 종용했다. 창길이는 “알겠어요. 나는 다만 흐름에 보조를 맞출 뿐이에요.” 하며 웃었다. 조수석의 혁재는 “이런 날은 정말 운전할 맛 나지 않아요? 분위기 너무 좋다.” 하며 술에 취한 듯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는 폭우가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쏟아졌다. 겁이 났다. 창길이는 그 폭우 속에서도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폭우는 무주와 안성을 거쳐 목적지인 진안에 도착하며서 약간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후배의 집에 도착해 짐을 내리려고 할 때 다시 거센 비가 쏟아졌다. 집을 떠난지 4시간 만에 빗속에서 후배 희순이와 영택이 내외를 만났다.
점심을 겸한 낮술 자리가 10시까지 이어졌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후배의 집은 절간보다 고요했다. 정말 오랜만에 힐링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위기 메이커 창길이가 장작불을 피웠고 불 주위에 모여 우리는 아이들처럼 수다를 떨었다.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제주 행을 결심할 때도 그랬지만, 얼마 전 1톤 화물차를 캠핑카로 개조해 전국을 여행할 때도 그랬고, 이번 진안에 정착할 때도 그랬다. 후배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왔다. 일단 결심하면 망설임이 없었다. 낯선 상황을 만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후배지만 그것이 나는 존경스러웠다. 가끔은 형제들보다 나를 더욱 이해해 주는 후배들, 말년은 이 후배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진안 산 동네에서 얼마를 더 살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수많은 꽃과 새와 병풍처럼 펼쳐진 앞산과 뒷산,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새소리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구름이 많아 별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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