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지금은 고통 분담과 상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 본문

그는 문화단체 대표다. 젊은 시절에는 인천의 대표적인 투쟁 사업장인 K 산업에서 노조민주화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고 조합 풍물패에서 풍물을 배웠다. 해고 이후 본격적으로 풍물 장인이 되기 위해 지난한 길을 걸었고 마침내 전통 연희단의 수장이 되었다. 사회적기업이 된 그의 단체는 최근까지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초대되어 연희를 베풀고 그것을 통한 수입으로 삶을 꾸려왔다.
하지만 코로나 창궐 이후 행사나 모임이 줄어들면서 그의 단체는 필연적으로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관의 지원에 집요하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의존하는 단체의 식구들도 적지 않았고 그 역시 생계를 감당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화재단, 구청, 시청, 교육청, 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원 등 그가 지원을 얻기 위해 계획서를 제출하고 접촉한 단위는 한두 개가 아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예술가와 예술단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서 그 역시 이를 통해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치열한 보급 투쟁’(?)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인천의 예술가와 단체들을 지원하는 지원 시스템 속에서 그는 지나치게 많은 파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의 지원 원칙은 형평성과 투명성이다. 실력이 있고 열의가 있다손 치더라도 한 단체가 한정된 파이 중 너무 많은 부분을 독식하는 건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과 공생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내 몫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몫일 수 있는 것 중 일부를 포기하거나 타인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이 절실할 때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열정은 자신의 식솔들에게는 믿음직한 모습으로 보일 테지만, 다른 단체들에는 탐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노력과 열정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집요함은 가족과 조직에 대한 걱정과 헌신의 마음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지금은 누구나 다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절박함에 있어서는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은 내 것을 하나 더 챙기겠다는 이기적인 태도보다는 모두가 상생할 수 있도록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모두가 고사(枯死)하고 내 ‘가족’만 살아남는다면 그 황폐해진 문화예술생태계에서 도대체 홀로 남아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나 단체 사이의 시너지는 기대할 수 없고 나중에는 결국 그들 단체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의 문화 시장은 그렇게 쉽사리 독점할 수 있는 단순한 시스템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형님,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라고 연락을 해오면 덜컥 겁이 난다. 나는 그의 몫을 챙겨줄 능력도 안 될뿐더러 설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양보와 나눔의 미덕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고통 분담을 제안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혹시 나에게 가졌던 나름의 기대가 깨져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설득할 것이고 만약 나의 설득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서운함만 느낀다면 나 역시 그에게 서운할 것이고 우리의 만남은 이후 지속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연대와 배려란 자신의 하찮은 것 하나를 마지못해 버리는 게 절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 내 몫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걸 상대에게 건네는 것이 진정한 배려고 마음의 연대다. 그의 출신과 실천의 이력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러한 연대의 원칙과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오늘 6시, 그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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