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인천민주화운동센터 개소식 및 출판기념회 본문
퇴근 후 갈매기에 들러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들어갈까 하고 구월동 쪽으로 걸어 내려갈 때 노동특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민주화운동센터 개소식 및 출판기념회에 교육감이 참석하여 축사하는데, 혹시 특보들도 참석할 수 있느냐며 비서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노동특보도 형수가 병원에 입원하여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며 서둘러 전철역으로 가고 있다가 연락을 받은 것이다. 사실 나는 민주화운동센터의 자문위원이기도 해서 며칠 전부터 오늘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긴 했다. 하지만 오늘 새벽까지 잠을 못 자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막걸리 한두 병 마시고 초저녁부터 잠을 잘 요량이었다. 곧바로 노동특보를 만나기 위해 시청역으롤 발길을 돌렸다. (이런, 직장인의 비애여!) 노동특보아 함께 센터에 도착했을 때 교육감은 비서와 먼저 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코로나로 몇 차례 연기되다 뒤늦게 열린 개소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인천 노동자 민중운동의 원로부터 시작해서 4~50대 젊은 시민단체 활동가들까지 참석자는 대충 헤아려도 백여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늘 보아오던 얼굴들이지만 감염병 때문에 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무척 반가웠다. 80이 넘은 오순부 선배와 박남수 선배는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70대인 원학운 선배와 염성태 선배도 청년들처럼 목소리가 우렁우렁했다. 그러나 그들이 청년 시절부터 꿈꿔온 세상과 현재의 세상이 얼마나 같아졌고 또 여전히 얼마나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제의 용사들’은 확실히 많이들 늙었다. 하긴 청년이었던 내가 내일모레 환갑이니까. 몇몇 선배들은 옛 시절의 활동 이력을 훈장처럼 여기며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장년층의 언어 습성을 비꼬는 젊은이들의 신조어)의 삶을 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청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선배들도 적잖게 있다. 그분들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다만 이제는 운동의 방식도 새롭게 고민되어야 할 때다. 신념의 강도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젊은이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의 감수성을 만들지 못하면 고식적이고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를 비롯한 중장년의 임무일 것이다.
1부 개소식이 끝나고 교육감은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고 나도 곧이어 센터를 나왔다. 전철역으로 가면서 갈매기에 전화를 걸어 “형, 혹시 혁재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혁재도 없고 손님도 몇 명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어요.”하고 전철에 올랐다. 전철 안에서 등산화를 주겠다고 연락을 해온 정아에게 전화를 걸어 만수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3번 출구에서 10여 분 기다리자 정아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맞을지 모르겠어. 형이 260 신는다고 했지?” 하며 등산화를 건네줬다. “고마워. 잘 신을게.”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신어봤더니 다행히 딱 맞았다. 워커처럼 무거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43만 원짜리 마무트 중등산화였다. 동네 뒷산을 다닐 때 신는 등산화가 아니었다. 정아에게 톡을 보냈다. “다행히 잘 맞네. 근데 좀 무거워. 히말라야 정도는 가야 어울리겠어.”라고 하자. “다행이네요.^^” 하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누나가 사다 놓은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엄마도 입에 맞았는지 많이 드셨다고 했다. 어제 끓여놓은 비지찌개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비닐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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