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22년 만에 다시 찾은 실천문학사 본문
지난겨울, 이사회에서 출판사 운영과 관련한 논란으로 적잖은 내홍을 겪었던 실천문학사는 내게 고향 같은 곳이다. 실천문학사는 나 개인에게는 가장 살 떨리는 기쁨과 벅찬 사명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곳이면서 동시에 한국 문학장 안에서는 비교적 선명한 자기 색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창작과 비평이 거대 출판 기업이 되어 돈 되는 책들만 출간하거나 자본의 논리에 편승해 표절조차 걸러내지 못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80년대의 시대 상황에 빚진 바가 큰 창비가 이렇듯 대자본의 사업 관행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앞선 시대의 민중, 민족 문학의 역사성은 온전히 실천에 의해 계승되어 왔던 것이다. 최근에는 삶창이 발군의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 역사는 일천하고 아직은 제대로 여물지 않아 실천문학의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과거의 영화를 훈장 삼아 현재와 미래를 건강하고 창의적으로 조형하지 못할 경우, 실천문학 역시 문단의 ‘꼰대’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엄혹한 시절 실천문학과 실천의 시집들을 통해서 시대의 울분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그곳을 통해서 문단 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실천에 대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부심 또한 매우 크다. 현재 이전 시대의 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실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종이책을 발간하는 오프라인 출판사가 공히 겪고 있는 문제다. 다만 그러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실천의 정신’을 꾸준히 계승하려고 하는 실천문학만의 불퇴전의 문학정신은 결코 꺾여서는 안 된다는 말하고 싶다. 그것은 민족문학 진영의 최후의 보루이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 세 시, 출판사에 들러 시집출판 계약을 마쳤다. 계약금도 넉넉하게(?) 받고(물론 아직 입금되지는 않았지만ㅎ) 간만에 나의 등단 당시 사진과 작품들이 실린 22년 전 잡지도 출판사 서가에서 만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의 사진을 보니 웬 청년 하나가 의협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청년시절의 내가 가슴에 품은 채 있는 힘을 다해 견지하려 했던 가치들과 장년의 내가 지향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아득하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몸은 많이 망가지고 낡았어도 정신만큼은 여전히 올곧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출판사측과 이야기된 대로 진행한다면 대략 10월 말에서 11월쯤에 출간될 것 같다. 참으로 지난한 길을 멀리도 돌아왔다.
고맙게도 오혁재가 서울, 그것도 성북부까지의 여정이 멀고 낯설까 걱정된다고 나와 함께 서울행에 기꺼이 나서주었다. 마음이 짠하다. 세상과 사람들에 이렇듯 빚이 많은데, 저녁 해는 저리도 서둘러 저물어가고 있으니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일모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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