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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사랑 2017. 5. 19. 23:30

용궁정 사장인 종화 형이 일부로 나와 후배 몇을 불러서 막걸리와 밴댕이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안주를 공짜로 주셨다. 사실 민어가 주 메뉴인 용궁정은 안주 값이 너무 비싸 자주 가기 힘든 음식점이다. 사무실 근처라서 오며가며 가게 앞에 앉아 있는 형과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인사만 하고 지나친 후 근처 선술집으로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여러 번 봤을 것이다. 그럴 때는 형도 나도 다소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늘 우리 일행을 부른 것은 아마도 그런 마음의 부채(?)를 씻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형 입장에서는 굳이 부채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역시 형편에 맞는 술집을 찾아드는 것이 미안한 일은 아니다. 다만 서로가 잘 아는 사이이고 형 또한 장사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표현하기 힘든 어색함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빈한(貧寒)은 대체로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 용감하게(뻔뻔하게)도 만든다. 오늘 우리는 당당하게 들어가 뻔뻔하게 술을 가져다 부끄럼 없이 먹고 마셨다. 그건 형을 위한 우리 방식의 배려였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형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렇게 1시간 30분쯤 술을 마시다 본격적으로 넥타이를 맨 용궁정의 단골들이 들어차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곳을 나와 갈매기로 이동했다.

 

갈매기에 도착하니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부담스런 인물과 반가운 인물 반반이었다. 그 속에 우재 형도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담배 피러 나가는 형을 따라가 대뜸 이사를 해야 하니 이사비용 50만 원을 달라고 했다. 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말을 듣자마자 계좌번호를 물어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했던 나는 형의 그러한 태도가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액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없다면 그런 행동을 취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고마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미안하지는 않았다. 형은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그 돈이 정말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교적 앵벌이 모드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나저나 내일이 이사다. 이 집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만수3지구에서 보낸 시간 속에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시절도 있었고 또한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있다. 이곳에서 아버지를 보내드렸고, 아내와 헤어졌다. 아들의 청년시절도 이 시간 속에 있다. 많은 것을 얻었고 또한 많은 것을 잃었던 시간.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다. 그러나 앞으로 맞게 될 새로운 시간이 기대되기도 한다. 내 스스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듀, 3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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