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냥 문득 본문
아침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 길, 무성했던 꽃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이제는 푸른 잎들로 온몸을 감싼 벚나무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만약 사람도 동일한 공정에서 생산되는 로보트들처럼 겉모습이 모두 똑같게 태어난다면 세상에는 지금처럼 가슴 아픈 일이나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야 하는 뜬금없는 생각.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모두 비슷한 잎을 달고서 후박을 가리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책을 하는 두어 시간 동안 산과 길에서 만나는 모든 나무들과 길가의 꽃들을 보면서 나는 깊어진다. 산행은 언제나 나의 몸과 마음을 신선하게 만들어준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고 날이 섰던 마음도 순화시켜 주는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리에 서기까지 온갖 잡생각과 유혹들만 떨쳐낼 수 있다면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크나큰 맹점이다.
오후에는 로미 씨로부터 연락이 와서 혁재와 갈매기에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늘 미안한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 산이와 바람이도 이후에 합석했다. 세상의 만남이 실제적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또한 모든 자리가 통념적인 의미에서 '보람과 가치'가 있는 자리도 아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도대체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의구심을 갖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습관 때문에 혹은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 때문에 원치 않는 자리를 갖게 되거나 스스로 무의미한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모든 순간들 역시 내 삶의 일부분이고 우연의 얼굴을 한 필연적 상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세상과 내가 맺고 있는 허다한 관계들은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거나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았으나 무위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고, 아무 생각 없었으나 뜻밖의 의미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스미며 살아야겠다고.. 쉽진 않지만 이 또한 강박을 갖을 일은 아닐 것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모임 (0) | 2017.05.06 |
---|---|
어머니와 사전투표를 하다 (0) | 2017.05.05 |
다시 산에 오르며 (0) | 2017.05.03 |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0) | 2017.05.02 |
2017년 메이데이 (0) | 2017.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