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다시 4월이 왔습니다 본문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가 올 해도 예외는 아니네요. 수요일 밤부터 목이 아파오더니 목요일 아침에는 천근만근, 결국 하루 결근하고 금요일에 조금 차도가 있었으나 ‘참새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 쓰는 후배와 노래하는 후배를 만나 송명섭 막걸리를 서너 병 마셨더니 다시 악화. 오늘까지 골골거리고 있습니다. 햇살은 너무 좋은데, 이 화창한 봄날, 콜록거리며 이불 속에서 하루를 보내려니 괜스레 서글퍼집니다. 오늘도 텔레비전 쇼프로와 영화를 보며 하루를 소일했고, 담배를 사러 잠깐 나갔다 온 것이 바깥 공기를 쐰 전부입니다.
이제 다시 4월이 왔습니다. 개흙을 뒤집어 쓴 채 녹슬어가는 세월 호는 목포항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3년 여 세월 동안 봉인된 채 은폐되어 있던 진실이 4월의 햇살 아래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진실의 자기부상 속성을 나는 믿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힘과 충분히 설명되어질 수 있는 현실의 의지들이 분명 흉물스럽게 부식되어 가는 저 세월 호의 몸통으로부터 봉인된 진실을 끄집어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의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폐된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생자들의 고통을 새삼 추체험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고통조차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진실이 가져다줄 고통스러움 때문에 눈 닫고 귀를 닫는 것은 남은 자들의 양심이 아닐 겁니다.
어머니는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으시고 과일을 사러 나가셨습니다. 감기에는 과일을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는 시장에 간 겁니다. 아마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의 손에는 딸기나 토마토 등속의 과일이 들려있을 겁니다. 어쩌면 생강과 배도 들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것도 엄청난 불효입니다. 좋은 옷을 입혀 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식의 도리라는 걸 생각합니다. 고답적인 말이지겠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효경의 말이 오십대 중반이 되니 자연스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봄이 또 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을 허청거리게 만들는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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