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견고한 우기 (7-18-목, Heavy rain) 본문
견고한 우기(雨期). 빗물은 예정된 세금 고지서처럼 집요하고 쉴 틈 없다. 빗물 속으로 분절(分節)된 오전의 시간이 제멋대로 떠간다. 흐르는 빗물을 보며 잠시, 오늘만은 골치 아픈 현실일랑 팽개쳐두고 마음이 가는 대로 흘러가 보리라 다짐해 보지만, 현실의 장력(張力)을 견디지 못한 마음은 결국 다시 쉰내 나는 일상으로 회귀하고 말 것임을 나는 안다. 하여, 그것이 무엇이든 ‘흐르는 것들’에게 붙들린 몸과 마음이라면, 당연히 흐르는 그것들과 함께 흐를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러는 한편, 당신에게 던진 수많은 말의 가벼움에 관해서도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다만 그리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당신에게 스며들기를 바랐던 것이지만, 내 마음이 실린 말과 표정들은(을) 자주 당신을(은) 비껴갔다. (마음의 흐름이)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렸다. 여전히 밖에는 굵은 빗줄기.
종일 비는 내리고 처처에서 술 마시자는 문자가 도착했다. 감기와 몸살을 핑계로 거절했다. 맘 속에서는 '다시 전화를 걸어 만나겠다고 할까?' 유혹이 꿈틀댔다. 비 내리는 날에는 항상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친구가 일부러 만든 술자리를 거부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나 자신이 낯설었지만, 낯선 만큼 뿌듯하기도 했다. 오늘 하루 SNS에서는 온통 비에 관한 이야기였다. 비서실 직원들과 점심 먹으러 갈 때에도 화제는 비와 우산이었다. 빗속을 걸어가며 우리는 잃어버린 우산, 우연히 주운 우산, 어쩔 수 없이 슬쩍한 우산, 그리고 새로 산 장화를 신고 온 여비서의 뿌듯함에 관해서 말하고 듣고 까르르 웃었다.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늘 가던 순두부백반 식당은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지 못했고, 다행히 근처 부대찌개 식당에 자리가 있어 예정에 없던 부대찌개를 먹었다. 맛은 별로였다.
비가 많이 왔으나 술 생각을 억지로 누르고 귀가했다.
좀처럼 드문 일이다. 아이스크림과 분식에 대한 욕망도
이렇듯 억누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한없이 무모해졌다.
늦은 밤에 비로소 비가 그쳤다. 비가 사위니 폭염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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