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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레고르 잠자, 단 1통의 전화를 받다 (11-25-토, 맑음) 본문

일상

그레고르 잠자, 단 1통의 전화를 받다 (11-25-토, 맑음)

달빛사랑 2023. 11. 25. 23:29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며 돼지처럼 지냈다. 이럴 때, 잠깐! '이럴 때'라니? '이럴 때"란 도대체 어떤 때를 말하는 거지? 게으름을 피울 때? 아니면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하며 자유롭게 지낼 때? 본능대로 사는 삶은 종종 게으른 삶으로 이해된다. 개미도 본능대로 사는 곤충인데, 그렇다면 개미가 게으른 건가? 그럴 리가! 이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무튼! '이럴 때', 그러니까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삶을 비유할 때 매번 돼지를 소환하는 것은 참 진부하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동물이 돼지밖에 없을까? 창발적 사고와 발칙한 상상에 게으른 거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의 사유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게으름이다.

다시 아무튼! 그 게으른 비유를 백 번 인정한다 치더라도, 내가 돼지'처럼' 지냈다고 해서 당장 오늘부터 내가 실제 돼지가 된 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황당함이나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종종 부사격 조사 '처럼'을 주격 조사 '가'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다. 그나저나 돼지 아닌데 돼지처럼 지낸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다른 종의 삶을 살아 봤으니 신선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또 다시 아무튼! 종일 돼지처럼 지냈기 때문에(잠깐! '때문에'라고? 과연 이 문제를 인과적으로 엮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오늘은 그렇다고 치자),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사실 돼지가 인간을 기다리는 일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돼지의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8시, 신포동에 있다며 전화를 건 맑은 인간 H의 전화가 오늘 내가 받은 유일한 전화다. 너무 감동해서 "꿀꿀" 할 뻔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사실 몰라도 그만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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