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치과 진료 ❚ 시집을 사다 (11-24-금, 맑음) 본문
날이 겨울답게 차가워졌다. 이제 온전히 겨울 속으로 들어왔다. 겨울은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자신의 계절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겨울다운 것이다. 냉정한 모습을 보이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든 그건 오로지 겨울의 마음이다. 그런 겨울의 마음을 이해한다.
오늘 나는 중급(中級) 수준의 방한 옷차림으로 외출했다. 두툼한 오리털 잠바 대신 목 폴라와 후드티셔츠에 경량 패딩을 걸쳤다. 땀이 날 정도는 아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나처럼 땀이 많은 사람은 지나치게 방한이 잘 되는 노스페이스 오리털 잠바보다 오늘 같은 옷차림이 가볍고 적당하다.
점심때는 치과에 들러 윗니의 본을 떴다. 이제 수술 부위 상처가 거의 아물어 통증도 없고 부기도 내려 본격적인 임플란트 결속을 위한 6부 능선의 작업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본래 잇몸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임플란트가 제 치아처럼 편안하고 완전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나는 그렇게까지는 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임플란트는 정말 인내심과 기다림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수술인 것은 확실하다. 오늘도 원장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예술가처럼 나의 입속을 살펴보며 진료 계획을 짰다. 나는 누워서 그녀가 하는 혼잣말이나 위생사들에게 전달하는 지시 사항을 들으며 그녀가 무척 섬세한 의사라는 걸 느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에 읽고 무척 좋아했던 시인인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모두 구매했다. 『이 시대의 사랑』과 『즐거운 일기』, 『빈 배처럼 텅 비어』는 가지고 있는 시집이지만, 너무 색이 바랬거나 찾을 길이 없어 다시 주문한 것이다. 그녀의 시들을 다시 읽으며 가장 순수하고 치열했던 그 시절의 감수성을 되찾고 싶은 의도도 마음 한편에 있다. 시에 게을러진 나의 가슴을 다시금 격동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자구책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겠지.
최승자 선배님, 고맙습니다. 여전히 우리 옆에 있어 주셔서,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시들을 보여주셔서. 당신의 시를 읽으며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는데,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의 시인이 되어 다시 당신의 시집들을 펼쳐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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