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10-13-木, 맑음) 본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영화를 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관심이 큰 만큼 이 영화에 관한 리뷰도 무척 많더군요. 영화 평론가들의 전문적인 리뷰는 물론이고 자칭 영화광들의 개인적인 리뷰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왜 이 영화에 관한 리뷰가 그토록 많은지 알 거 같았습니다. 영화 자체에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장면들이 무척 많더군요. 분석을 좋아하는 평론가들이나 호사가들이 반색할 영화였다는 말입니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이미 많은 리뷰를 시청한 후에 봤기 때문인지 해석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 해석(감상) 역시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된 것이지만, 암호처럼 영화 곳곳에 배치해 놓은 감독의 의도(다양하게 해석해주길 바라는 것까지 포함한)를 읽어내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나 구체적인 분석은 삼가겠습니다. 왜냐하면 명민한 평론가와 블로거들이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다채로운 해석과 정밀한 분석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영화 속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장면, 다시 말해서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장면들에 관한 제 나름의 견해를 기술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이미 나와 있는 글과 상당 부분 일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화를 보기 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이 영화를 세밀하게 분석해 놓은 글들을 이미 읽었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그 해석들을 이 글에서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나는 영화 속 대사(문장이나 단어)를 중심으로 그것에 담긴 인물의 정서와 당시의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하여, 이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견해일 뿐 ‘정답’(예술작품에 정답이라는 게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이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둡니다.
탕웨이라는 배우, 그 대체 불가한!
사실 내가 이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곳곳에 심어 놓은 감독의 암호들 때문이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를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한 탕웨이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묘한 매력으로 작품 속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그녀의 연기력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눌한 한국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배우 탕웨이와 작품 속 여주인공인 서래가 마치 한 사람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인데,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이 탕웨이가 아니었다면 (아,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현재와 같은 많은 관객의 호응과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영화 속 서래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배우로는 제가 아는 한 탕웨이가 유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체 불가 배우라는 말이지요. 그야말로 탕웨이가 ‘탕웨이 한’ 영화였습니다.
안개, 그 천연덕스러운 비정함이여!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정훈희 노래 ‘안개’
이 영화의 리뷰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정훈희가 부른 ‘안개’였습니다. ‘안개’는 다소 신파적 내용의 가사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매우 적확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독도 이 노래를 OST로 사용한 게 아닐까요? 아무튼 안개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유력한 상징입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아니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안개를 통해 인물의 알 수 없는 내면과 불투명한 미래를 형상화했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 떠올랐습니다.
제약회사 사장 딸을 아내로 둔 도시 남자 윤희중과 낯선 공간인 안개 포구(무진)에서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던 하인숙과의 짧은 만남은 안개가 맺어준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진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온 희중은 인숙과의 짧았던 사랑의 기억을 안개에 묻어버리고 도시의 삶 속으로 귀환합니다. 그들의 불륜은 안개가 강제한 ‘원나잇 스탠드’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죄의식 또한 안개 속에 봉인된 채 잊히고 마는 것이지요.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그야말로 한낮의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 같은 심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해준은 안개의 포로가 되어 그 속에 가려진 상황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고, 서래는 그 안개를 걷어내고 환한 빛으로 나오고 싶어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모든 것을 품어주는 안개의 친절함에는 독이 있지
영화를 보며 퍼뜩 생각난 또 하나의 작품은 기형도의 시 ‘안개’였습니다. 이 시에서 안개는 산업화, 현대화된 사회에 드리워진 사회적 분위기, 문화, 제도 등, 모든 것을 망라하여 담고 있는 상징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인의 사고와 정신을 잠식한 산업화와 현대화의 망령들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안개 속에서는 죽음조차도 개인의 불행일 뿐 안개 탓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짐짓 냉정하게 말하는 이러한 표현은 ‘그것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반어로 읽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안개는 비정하고 모든 것의 본질을 감추어 주는 은폐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안개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공고한 산업화의 시스템 속에서 그들은 이미 그것의 하부를 지탱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안개는 알고 있었다
‘무진기행’과 ‘안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안개의 천연덕스러운 비정함 혹은 (자신들만의 은밀한 사랑을 완성해 줄) ‘고립된 섬’에 머물고자 하는 욕망의 모티브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가둔 이포의 안개는, 각자 배후자가 있는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하는 동시에 사회적 지탄 대상인 그들의 관계를 그들만의 비밀로 은폐할 수 있는 기제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결국 뿌연 현실을 명증하게 보기 위해 해준은 자주 안약을 눈에 넣지만, 그는 청맹과니처럼 서래의 사랑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관계는 결국 비극적으로 마감되리라는 것을 안개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마침내’라는 단어
영화 초반 시체검안실에 들른 서래는 남편의 시신을 보고는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해준은 서래의 단어 선택에 묘한 느낌을 받고는 “한국말, 저보다 잘하시네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얼핏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듯해 보이는 이 단어의 선택은 사실 나름의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한국인 중에서 ‘마침내’라는 표현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마침내’라는 부사어는 구어로는 잘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이나 ‘급기야’와 달리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에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서래가 남편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마침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후 문맥상 확실히 뭔가 부적절한 단어 사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관객들은 해준의 프로파일링 속에서 사건의 전말(顚末)이 재구성될 때, 이 단어 사용이 서래의 잠재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대변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후 망원경을 이용해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던 해준도 “우는구나. 마침내”라는 혼잣말을 합니다. 작품 초반에 이 단어를 배치한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절묘한 대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이 문장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서래가 중국어로 한 말을 해준이 번역기로 해석한 문장입니다. 서래는 ‘마음을 가져다 주세요’라고 말을 한 것이겠지만 번역기는 ‘심장’이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한 것이지요. 사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애틋한 사랑을 다룬 영화이면서도 인물들이 서로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러한 에두른 마음의 표현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명증한 사랑 표현의 익숙함 혹은 진부함을 극복하고 관객들에게는 더욱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두꺼비야, 두꺼비야, 헌 집 줄게, 새집 다오’처럼, ‘까마귀야(고양이), 내가 너한테 밥 준다고? 그럼 됐어. 나한테 선물을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마음)을 가져다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라고 말하는 서래의 마음, 얼마나 절실하고 눈물겨운지요. 이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표백(表白)은 없을 겁니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지나간 사랑은 과연 어떤 색일까요? 우리는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그 색과 빛을 잃은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너지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안간힘으로 지난 사랑을 의식적으로 미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온 존재가 뿌리째 ‘붕괴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서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부심 강한 경찰 해준은 서래와 나눴던 달콤한 순간들을 부정하며 위악적으로 말합니다. 그때 서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지요.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서래 역시 무너지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해준은 추궁하듯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일?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든 일이요?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라고.
사랑을 끝낸 마음과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은 이렇게 처연하게 부딪칩니다. ‘그렇게’라는 부사어에 담긴 서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 애잔해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사랑은 예고 없이 불어닥친 폭풍일 텐데, 그 폭풍 한 가운데에 믿음의 꽃을 심는 것일 텐데, 서래는 안간힘을 다해 그 꽃을 지키고 싶어 하고, 해준은 애써 그 꽃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하고……. 가엾은 정인들의 비껴가는 마음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고 애달픈 일입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해준을 잊지 못해 결국 이포로 내려간 서래에게 해준은 “이러려고(또다시 모종의 범죄를 통해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이포에 왔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며 모질게 묻습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게 당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질문은 이처럼 항상 날이 서 있습니다. 속마음은 그게 아니더라도 미련의 발아(發芽)를 용인할 수 없기에, 더 심하고 모질게 상대를, 아니 자신의 욕망을 잔인하게 내치게 되는 법이지요. 내 앞의 저 사람이 이전에 나에게 그토록 다정했던 바로 그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변해버린 해준의 모습을 보면서 서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서운함과 아쉬움,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겠지요. 그런 서래가 던진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는 질문은, 해준과는 달리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가는 자신의 사랑을 위한 적극적인 항변이었을 겁니다.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질문이라 하겠습니다.
또 한 장면, 다가오는 해준을 의식하며 돌아선 서래가 스마트 워치에 대고 중국어로 말합니다. “그가 온다. 오자마자, 이러려고 이포에 왔냐고 물을 텐데 어떡하지? 왜 자꾸 눈물이 나고 난리야, 송서래. 답을 말해야 하나? 아냐. 이미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묻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나 끝내 해준은 답을 몰랐고, 서래의 마음을 몰랐으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가엾은 서래…….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마침내! (많이 돌아왔고 많이 늦었지만) 모든 걸 깨달은 해준도 차를 운전하며 서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언제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느냐고 물어보지만, 허탈하게 웃으며 눈물짓던 그녀는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고 중국어로 말합니다. 안타까운 해준은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해달라고 사정하지만 서래는 바다에서 건진 폰은 다시 더 깊은 바다에 버리라는 말만 남기고 이내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헤어질 결심’을 한 정인(情人)은 완강해지는 법입니다. 비껴가는 사랑에 더는 희망을 걸지 않겠다는 마음이겠지요. 서래는 묻고 또 묻고 싶었을 겁니다.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눈빛, 초밥을 전해주던 손길, 매일 밤 집 앞에 와서 나를 지켜보던 당신의 시간, 내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던 당신 손의 감촉,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해준 씨, 바다에서 건진 전화 그거 다시 버려요. 더 깊은 바다에 버려요.”
이제 반향 없는 사랑의 고백도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접수되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봉인하기로 결심한 후 서래는 ‘붕괴된 삶’을 비탄하던 해준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복의 계기(사랑이겠지만)를 마련해주고자 합니다. 그건 마지막 기회였지요. 해준이 몰라줘도 할 수 없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소멸을 향해 걸어가는 안타깝고도 거룩한 행보였습니다. 이보다 절실한 사랑, 이보다 명증한 고백이 또 있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 속 해준이 되어 지독한 사랑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어떨 때는 서래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해준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지만, ‘마침내’ 닿은 곳은 사랑을 잃고 바닷속을 헤집으며 울부짖는 해준의 마음속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건의 전개 과정이나 범행의 추리 과정은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강조하거나 그 감정의 해석을 중의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장치일 뿐 이 영화는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직조된, 지독하게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였던 것입니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라는 서래의 말처럼 이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언어가 다르고 사랑에 관한 관점이 다르고 처한 상황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여겨진 것이 상대에게는 ‘헤어질 결심’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어긋난 사랑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물론 표면 서사만으로 볼 때, 해준은 살고 서래는 죽었으니 서래를 향한 안타까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쇼왼도우 부부이긴 했지만) 아내도 떠나고 뒤늦게 서래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깨달은 해준의 남은 생 또한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서래를 삼킨 바닷속을 헤매며, 그녀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는 해준의 모습은 그가 결코 이 사랑의 격정과 상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알려주는 명증한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처럼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랑 영화는 난생처음입니다. 영화 보는 내내 해준에게 감정 이입된 나로서는 (물론 해준이 이포로 이사한 후에는 서래에게 더 자주 감정이 이입되기는 했지만)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감정 상태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해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서래를 생각할 때는 내 목이 컥컥 막히는 것같이 답답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아온 서래에게 해준은, 밝은 세상으로 안내해 줄 빛이자 최초로 경험한 따스한 사랑의 ‘가능성’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해준은 떠납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해준을 찾지만, 해준은 그녀의 사랑을 진심으로 눈치채지 못합니다. 자꾸만 밀어내기만 합니다. 해준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큰 만큼 해준의 그와 같은 반응은 그녀의 가슴을 할퀴는 비수였을 겁니다. 그때 ‘붕괴된’ 그녀의 마음은 그녀만의 방식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헤어짐이자 해준과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녀만의 역설적인 사랑법이었던 것이지요. 해준의 가슴에 영원히 남음으로써 그녀만의 방식으로 복수한 것이기도 하고요.
결국 서래는 바다를 좋아했고 바다에서 와서 바다로 떠났습니다. 해준의 사랑은 그렇게 끝났고, 서래의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라지는, 다시 말해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자신을 봉인함으로써 마침내 완성하는 이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의 역설이라니……. 문득 내가 술자리에서 때때로 구겨진 휴지처럼 방치되어 있곤 할 때, 후배 승미가 자주 불러주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고 싶습니다. 서래와 해준에게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참 쓸쓸한 일이었던 게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이루어진 적이 없는 사랑 속의, 연인 아닌 연인들, 가여워라.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양희은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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