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안녕함'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10-10-月, 비 내리다 갬) 본문
새벽운동을 갈 때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센터를 나오니 부슬비가 내렸다. 잠깐 내리다 멈출 비는 아닌 듯했다. ‘가을장마처럼 웬 비가 이리도 자주 내린담’ 하며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걸었다. 집 앞 슈퍼에서 우유를 사 갈 생각이었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어 사지 못했다. 근처에 편의점이 세 개나 있었지만 슈퍼보다 너무 비싸서 그냥 집으로 왔다. 매번 느끼지만 집 앞 슈퍼 사장님은 욕심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게으르던가. 8시가 넘어야 장사를 시작하니, 새벽형 인간인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대개 11시면 문을 닫는다. 오전에는 아들이 가게를 보고 오후부터 문 닫을 때까지는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늦게 열고 일찍 닫는 게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다. 하긴 장사를 길게 하려면 쉬 지치지 않는 것도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긴 호흡으로 장사하려는 사장님의 시간 안배 방식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집에 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읽던 책을 뒤적거리다 깜빡 잠들었다. 낮잠치고는 제법 긴 잠을 잤다. H의 카톡 문자만 아니었다면 아마 한 시간쯤은 더 자다 일어났을 것이다. H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는데, 예상했던 대로 최근의 바쁜 일정을 날짜와 시간 순으로 나열한 후 나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문자 속에는 H의 피곤함이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답장을 보내주고 창문을 여니 서늘한 바람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상쾌했다. 비는 자기 전보다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잠자다 들은 “쏴~”하는 소리가 공기청정기 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오후가 되면서 비는 그쳤지만, 이후로도 몇 차례 내리다 그치고 다시 내리고를 반복했다. H에게 답장할 때 “이제 막 해가 나네” 했는데, 이내 비가 내려 머쓱하고 황당했다. 늦은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끓여 먹었다. 놀랍게도 오후에도 낮잠을 잤다. 자다가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작은방을 청소했다. 여름 내내 작은방에 옮겨 놨던 소파를 다시 거실로 옮기고 쓰지 않는 커피포트 두 개를 버렸다. 치워놓고 보니 너무도 산뜻해 썩 마음에 들었다.
저녁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이 평소보다 다소 쓸쓸하게 느껴졌다. 월요일이라서 혹시 혁재가 갈매기에 있을까 카톡을 보냈더니 직접 전화를 걸어와 동화마을에 있으며, 막걸리를 사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젠장,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하긴 술꾼들이 비 내리는 가을밤에 술상 옆 말고 어디서 쉬겠는가. 밤늦어서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H는 토요일부터 보일러를 가동했다고 말했다. 나도 지난주부터 전기장판을 켰고, 오늘은 보일러도 켰다. 기분 좋은 온기가 종일 집안을 감쌌다. 긴 팔 셔츠를 입었는데도 땀이 나질 않았다. 계절의 변화, 그 길목에 우리는 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어가는 가을 (10-12-水, 맑음) (0) | 2022.10.12 |
---|---|
내 그리움의 끝은 당신입니다 (10-11-火, 맑음) (0) | 2022.10.11 |
한글날 (10-9-日, 종일 비) (0) | 2022.10.09 |
당신의 주말은 무슨 색이었나요? (10-8-土, 맑음) (1) | 2022.10.08 |
제3회 학산 백일장 심사 (10-7-金, 맑음) (0) | 202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