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내가 모르는 나에 관하여 (10-14-金, 맑음) 본문

일상

내가 모르는 나에 관하여 (10-14-金, 맑음)

달빛사랑 2022. 10. 14. 00:52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사람의 전 삶을 내 삶과 일상에서 수용하는 일이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옛날부터 나는 그랬다. 당장 마음을 수용하기에는 확신이 들지 않는 상대가 나를 좋아할 경우, 나는 어장관리 하듯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마음을 조절했다. 비겁한 일이다. 이를테면, 상대의 마음이 지나치게 뜨거워졌을 때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마음을 닫고, 나의 태도에 실망하거나 접수되지 않는 사랑에 지쳐 상대가 멀어지려 하면 ‘마음의 당근’을 슬쩍 던져 헷갈리게 하는, 그야말로 ‘관리’를 했던 것인데, 이건 정말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행동이었다. 상대가 겪는 마음의 상처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일 테니까. 문제는 누군가에게 나 역시 그와 같은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사랑이 아니라면 놓아주어야 하고, 책임질 수 없다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만 한다. 나를 가두리양식장의 송어처럼 가둬놓고 적당한 때 한 번씩 먹이(마음)를 주는 사랑, 그 먹이에 중독돼 가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하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도 못한 갇힌 사랑을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 물론 나에게는 모종의 감정, 이를테면 ‘좌절의 미학’이나 ‘상처의 미학’ 따위를 은근히 즐기는 정서적 마조히즘의 경향이 다소 있어서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내 시적 감수성을 고양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자주 겪을 일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반복되다 보면 정신이 황폐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한 안타까운 관계를 꾸려가면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그건 이후 사랑에 관한 나의 태도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는 했다.

여전히 나는 사랑에 관한 한 미숙한 초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뜨겁게 사랑했던 경험이 워낙 아득하다 보니,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연민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마음의 동요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 때가 되면 연락하고 비 오거나 바람 불면 안부를 묻고 가끔 혼자 있을 때 상대를 그리워할 뿐인 마음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다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보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무지 없다. 사랑꾼들은 자신의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해 정교하게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는데, 혼자 있는 게 워낙 익숙한 나로서는 그런 게 쉽지 않다. 어쩌면 나는 사람 그 자체보다 사랑이라는 행위의 로맨틱함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 마음의 울림 등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행위의 감상적 분위기를 나눠서 사고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에 관해서도 잘 모르겠다. 좋은 친구나 선후배로 지내도 되는 관계를 굳이 특화하여 힘든 상황을 자초하는 게 과연 사랑인 건지도 모르겠고, 차차 알아도 되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리거나 굳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알게 되는 일이 과연 두 사람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음이 가는 구체적 대상이 있고, 그를 향한 떨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사실 이런 감정조차 구태여 누군가를 특정해 사랑할 때만 그런 게 아니라 홀로 지낼 때도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나’의 모습이 서너 개는 있는 모양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