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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5월 26일 목요일, 맑음 본문

일상

5월 26일 목요일, 맑음

달빛사랑 2022. 5. 26. 00:30

 

어젯밤 내린 비 때문인지 오늘 아침 햇살은 더욱 투명해졌다. 오전에는 엄마가 요즘 응급실을 다녀온 후 식사를 제대로 못한다며 맘을 졸이던 혁재가 전화했다. 아침부터 취한 목소리가 다소 들떠 있었다. "형, 텃밭 원두막에서 술 한잔 하실래요? 내가 말뚝을 세게 하나 이미 꽂았어요." 들은 말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로 보아 엄마의 상태가 호전된 게 틀림없었다. 실제로 옆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척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조바심을 냈던 모양이다. 노인의 몸이 밥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 좋은 징후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심 안심하며 나 역시 덩달아 목소리가 높아져 "엄마는 좀 어떠셔?" 하고 물었더니, "울 엄마 100살까지 사실 거예요. 지금은 완전히 살아나셨어요." 했다. 예상은 했지만 혁재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하지만 부탁받은 원고를 오전 중에 보내줘야 했고, 어제도 과음했기 때문에 '원두막에서 한잔하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일단 하던 일을 끝내야 하니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했고, 혁재는 "그래요. 오후에 다시 전화할게요"라고 했지만 혁재의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엄마와 술 마시다 잠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원고 두 개를 끝내고 났더니 너무 피곤했다. 아마 혁재도 내가 원고를 핑계로 술자리를 피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혁재 역시 술이 고파서가 아니라 엄마의 상태가 좋아진 게 신나서 전화했을 것이다. 엄마를 잃고 보니 친구나 후배들의 엄마 안부가 자꾸만 궁금하고 걱정된다. 치환된 혹은 변형된 울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오후에는 17부작 멜로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훓어봤다. 오랜만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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