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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곤혹스러운 술자리 본문

일상

곤혹스러운 술자리

달빛사랑 2022. 5. 21. 00:42

 

왜 나는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생각난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닐 수 없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후배 인가의 주정과 민폐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굳이 발끈하여 성을 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혀를 차며 그의 주정에 짜증을 내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 순간 왜 내가 굳이 술판 보안관을 자처하며 그를 몰아 부치고 타박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공명심이 아니었을까? 만약 상대가 인가가 아니고 나보다 사회적 지위나 체력 면에서 훨씬 높고 강한 사람이었다 해도 나는 나서서 인가를 질책했을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왠지 개운하지 않았다. 살살 달래거나 진지한 얼굴로 주의를 주었어도 될 일인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대화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분위기를 깰 경우, '쟤는 늘 그런 인간인데 뭐...' 하고 참아야 하는 건지 다소 분위기가 썰렁해지더라도 다수를 위해서 총대를 메야 하는 건지 도무지 판단이 안 선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 건, 얼마 전부터 인가의 주정과 민폐에 짜증보다도 연민이 먼저 들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이 먹고, 인류대까지 나왔다는 인물이 새카만 후배들은 물론 절친과 지인들에게까지 무시당하고 개 취급을 당하는 걸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주사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종의 병이다. 그러니 어제 나는 '환자'를 모질게 몰아붙인 꼴이 된 셈이다. 물론 환자도 가끔은 물리적 제압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마시는 술자리에 허락도 없이 일행을 몰고와 합석한 것부터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분명 내가 반가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다소 비굴해 보이는 눈빛과 행동에서 나는 그것을 읽었다. 환자가 어찌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나는 반갑다며 다가온 환자에게 모진 소리를 해서 그를 내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다소 도를 넘은 내 힐난에도 별로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눈치 없게 "왜 그래요, 문 선배" 하며 그 특유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크게 웃었으니 말이다.

 

단골집에서 술 마시는 일이 편하면서도 마냥 편하지 않은 이유는 어제 같은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단골집이 아니다 보니, 어제처럼 예정에 없던 만남, 원치 않는 술자리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나로서는 가장 곤혹스럽고 귀찮은 게 바로 이런 종류의 '합석'이다. 조구 형 역시 갈매기가 단골집이긴 하지만, 술집을 찾았을 때 아는 사람이나 손님이 많을 경우, 미련 없이 다른 술집에 가서 술 마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MBTI에서 나는 너무도 확실한 I(내향형)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에 혼자 마시거나 좋아하는 사람 두어 명이 마시는 걸 좋아하지, 판이 커지거나 요란하게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나 혼자 마실 때 부담스런 인물이 허락도 없이, (사실 '앉아도 되지요?' 하고 물어올 때, 싫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내 술자리에 합석할 때는 정말 곤혹스럽다. 가끔 갈매기가 편하면서도 '술집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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