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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잠깐 엄마 생각(금요일, 맑음) 본문

일상

잠깐 엄마 생각(금요일, 맑음)

달빛사랑 2022. 5. 20. 00:41

 

7시 30분에 출근해 하루 일정을 확인한 후, 박모에게 보낼 원고를 작성하여 송고하니 10시 30분, 혈압약과 고지혈약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행(行)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노인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평일 오전이라서 병원에는 노인들만 많았다. 엄마도 오랜 기간 혈압약과 당뇨약, 고지혈약을 복용했고, 매달 길병원에 들러 신경과와 심장내과 진료를 받아왔다. 병원에 올 때마다 엄마 모시고 길병원에 들러 진료받던 생각이 난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의례적인 의사의 말에 환하게 웃으시던 엄마. 병원을 나와 근처 약국에 들러 한 보따리 약을 처방받아 올 때면 내 곁에 바짝 붙어 팔짱을 끼고 수줍게 웃으시던 엄마. 걸음이 불편하거나 주름 깊은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엄마에게는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이었고 아버지의 대신이었으며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너무나 무심했다. 엄마가 견뎌야 했을 적막한 시간들, 외로움, 나를 안타까워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깨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홀로 견딘 빈 집의 적요,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시간이었을까. 그 시간에 나는 엄마를 홀로 집에 남겨둔 채 지인들과 술 마시기 일쑤였다. 왜 사람들은 부모를 잃고나서야 후회를 하게 되는 걸까. 다시 한번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텐데..... 허망한 바람이다. 엄마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 건 생전의 내 무심함에 대한 벌일 것이다. 너무도 깔끔하고 너무도 의연하고 너무도 자애로웠던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약국에서 나오니 11시가 조금 지났다. 점심 시간 즈음이라서 청사로 곧장 가지 않고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집 근처 마트에 들러 간단하게 장을 봤다. 사 온 부식들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먹다 남은 오리탕에 살을 발라놓은 프라이드 치킨 살을 넣어 바글바글 끓였더니 먹기에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청사에 도착하니 12시 15분, 집에서 직장까지 15분밖에 안 걸리는 건 무척 큰 이점이다. 이미 점심을 먹은 직원들은  구내 식당에서 나오고 일부는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육감이 재직 중일 때보다 청사는 무척 한산했다. 연월차를 내는 직원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요즘 감사원 직무감사 중인 데다가 선거철을 앞두고 교육부에서 복무 점검을 나올 것이니 복무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연신 문자가 도착하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조직의 수장이 부재한 직장인은 윗어른이 없는 집 안의 아이들 같다. 물론 불법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직원들에게 가급적 연월차를 활용하라고 권고한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직원 공백이 집중되니 걱정되는 것뿐. 하긴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어느 조직이나 조건과 상황을 탓하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해당 조직을 끌고 나가는 법이다. 청이라고 다르겠는가. 코로나로 인해 청의 직원들도 사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다. 최근 거리두기도 완화되었겠다, 대장님도 안 계시겠다 핑곗김에 쉬어가는 것일 테지.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다 조치해 놓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암튼 금요일만 되면 청사는 무척 썰렁해지니, 나로서는 무척 한갓져서 오히려 일하기(내 일이라는 게 대체로 글을 쓰는 일이니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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