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당신은 하늘에서 우리는 지상에서 본문
아들은 정확하게 9시에 도착했다. 안 보이는 사이에 살이 좀 붙어 있었다.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4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했지만 동생 아파트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있을 때 예닐곱 명의 가족들이 우르르 나와 차에 오르기도 했다. 9시 30분쯤 간단하게 추모예배를 보았다. 찬송가는 부르지 말자고 동생은 말했지만, 제수와 나는 조그맣게라도 부르자고 했다. 성경을 돌아가며 교독하고 기도를 했다. 교회에서 배포한 추모예배 자료가 있었지만, 그것을 읽는 대신 내가 가족을 대표해서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비록 열심히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어디서 누군가가 “당신의 종교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신앙을 버리지는 말자고 당부했다. 그것이 평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오셨고 마지막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엄마(할머니)의 바람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엄마를 사랑했다면 엄마의 뜻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내 이야기를 동생과 아들, 조카들이 얼마나 진중하게 마음에 새길지는 알 수 없지만,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엄마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신앙을 버릴 생각은 없다. 크리스천으로서 향기가 나는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독신(瀆神)을 하거나 신앙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동생 내외는 떡만둣국에 갈비, 잡채, 산적, 문어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모두 다 맛있었다. 수고한 제수에게도 세뱃돈을 주었다. 소녀처럼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이렇게 마음을 확인하며 대화를 나눈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들은 설 선물이라며 현금 20만 원을 주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받았다. 아들이 아비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나는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아들은 사촌 동생들에게도 5만 원씩 용돈을 준 모양이다. 벌써 커서 부모와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다니 내가 더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엄마와 관련해서도 그렇고 자신의 결혼이나 향후 살아갈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설사 이혼했다손 치더라도 엄마와 아빠가 식장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술김이긴 했지만, 평소에 가졌던 생각의 일단이 표출된 것일 게 분명하다. 그건 이후에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나는 말했고, 아들은 “아니야, 반드시 그래야 해, 아빠.”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아들이 원하면 못할 건 없지만, 어색하고 곤혹스러운 일인 건 사실이다. 내가 사다 놓은 막걸리는 두 병뿐이어서 아들이 나가서 세 병을 더 사 왔다. 맥주를 많이 마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막걸리를 잘 마셨다. 아들과 마시니 취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살아서 아들 손자가 마주 앉아 대작하는 걸 보았으면 무척 흐뭇해하셨을 텐데……. 아들도 취기가 도니 할머니가 무척 그리운지 자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엄마 없는 첫 명절, 정말 꽉 차게 하루를 보낸 느낌이다. 엄마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우리를 축복하고 계실 게 분명하니, 이제 우리는 지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될 일이다.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고 멋지게! 엄마, 이제 이곳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나도 오늘 엄마의 손자이자 내 아들인 수현이와 더불어 기분 좋은 명절을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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