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그리워서 그린, 혹은 그리다 그리워진 낯익은 풍경들 본문
오랜 세월, 집요하고도 한결같이 인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온 고제민 작가의 화집 『인천, 그리다』(헥사곤, 2020)를 전해 받았다. 이 화집 속 작품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인천의 역사이자 시간의 주름이다. 그림 속 풍경과 공간, 사람과 사물들은 그녀와 함께 환희와 신산함을 같이 겪어온 삶의 도반이자 이 도시의 얼굴들이다. 그들 혹은 그것들을 통해 작가는 위로받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단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제 몫의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가는 것의 뒷모습을 보며 연민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여, 독자들 역시 이 책 속의 글과 그림을 통해, 올연히 한 자리를 지키는 풍경과 사람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물론, 사라지는 것들이 던지는 비장한 유언들을 아프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섬세하면서도 정겨운 터치의 그림들은 그 자체로 중견 화가의 완숙함과 심미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을 사랑하고, 인천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오후에 후배들의 연락을 받고 어제에 이어 다시 또 갈매기 행(行). 이전에 민중운동을 함께 했던 정아, 인아, 금화를 만났다. 20대에 민중운동 현장에서 만났으니 어언 30여 년을 만나온 셈이다. 뭐 그렇다고 평소에 자주 만나왔던 것은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어떤 해는 아예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보낸 적도 있다. 특히 오늘 만난 세 사람의 조합은 무척 드문 경우다. 각각의 성향들과 관계를 꾸려가는 방식이 너무나 다른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이 오늘처럼 만나서 웃고 떠들게 되었다는 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자신의 모난 부분을 스스로 깎아내고 상대의 도드라진 개성을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여유로워졌거나 온갖 자극에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이제 후배라기보다는 같이 나이 먹어가는 삶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이 차이도 두세 살밖에 안 난다. 간만에 추억에 젖은 시간이었다.
후배들 만나러 간 자리에서 보고싶던 조구 형과 보름 만에 조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아쉬웠지만, 또 한 편 그렇게라도 우연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형이나 나나 이 감염병의 터널을 무탈하게 벗어나길 기원한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사굿ㅣ2020노동문화제 (0) | 2020.11.04 |
---|---|
박상률,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0) | 2020.10.09 |
영화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 (0) | 2020.07.08 |
셜록 홈즈와 왓슨의 콤비플레이에 박수를! (0) | 2020.06.20 |
소멸하는 빛을 향한 연민 혹은 의미 있는 말 걸기 (0) | 202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