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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선배들을 만나다 본문

일상

선배들을 만나다

달빛사랑 2020. 5. 25. 15:15

 

잃어버린 줄 알고 엊그제 다시 구입한 『ANNE』 1권을 오늘 찾았다. 미술 관련 책을 찾으려고 거실 책꽂이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아들이 보던 『헌법총론』 밑에서 빼꼼하고 얼굴을 내미는 게 아닌가. 다른 칸은 몰라도 그곳은 성경과 찬송가가 꽂혀 있어 자주 손길이 닿던 칸인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책을 찾았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 좀 더 찬찬히 책꽂이를 살피지 못했을까. 사지 않아도 될 책을 산 셈이 되었다. 날을 잡아서 책꽂이 정리를 해야겠다. 그럼 아마도 9번 책은 물론 뜻밖의 책들을 새로운 느낌으로 만나게 될 듯도 싶은데……


오후, 박귀현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늘 갈매기에 내 술값을 선지급해 놓곤 하는 고마운 선배다. 웬일인지 오늘은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한동안 못 봤더니 이것저것 궁금하다며 만나자고 하셔서 7시, 갈매기에서 선배를 만났다. 잠시 후 얼마 전까지 인천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한 원학운 선배가 합류했다. 두 분 모두 일흔이 넘은 고령인데도 체력이나 음주량에서 후배인 나를 압도하는 선배들이다. 일단 기골이 장대하고 낙천적이며 배포가 남다르다. 여전히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 마실 정도로 애주가들이기도 하다. 일흔이 넘은 양반들이 만나자마자 티키타카 하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외람된 말이지만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오늘, 귀현 선배가 40여 년을 살아온 신세계 아파트가 재개발 결정이 났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사회운동을 하고 정치판에 발을 담근 적도 있어서 한동안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집 하나만은 처분하지 않고 지금껏 지켜왔다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술잔을 건네면서 슬쩍 그런 기조의 말을 던졌더니, 선배는 “다 형수(아내) 덕이지. 형수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지.”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선배가 40여 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눈길 주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아내만을 사랑해온 순정파라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아마도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아내(형수)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잠시 후 계승사업회 송경평 선배와 친구 한 분이 합류했다. 유머가 넘치는 송 선배가 합석하자 술자리는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노동운동을 하고, 민중후보로 국회의원까지 출마했던 송경평 선배는 박귀현 선배와는 결이 다른 의리파다. 박 선배는 한때 진보진영의 입장과는 상충되는 정치적 선택을 함으로써 기왕의 동지들과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고, 그 전사(前事)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는데, 형에게는 그러한 이력이 여전히 뼈아픈 ‘주홍글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송 선배는 한결같이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물론 밥벌이를 위해 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천 민주진영의 대소사에는 항상 그가 존재한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은 앞장서서 하고, 옳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싫은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 지역 진보진영에서는 운동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선배에 대한 지배적 평가다. 다만 술을 너무 마신다는 것만 빼고. 9시가 넘어갈 때쯤,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이사장인 이우재 선배가 자신이 운영하는 인문학 서당 ‘온고재’로 우리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온고재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두 시간쯤 머물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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