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우리는 목하 전쟁 중, 모기가 돌아왔다 본문
모기가 극성이다. 제 철인 여름밤에도 볼 수 없었던 모기들이 무엇 때문에 추석이 지난 요즘에야 새삼 극성인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25도를 육박하고 거리에는 여전히 반팔 반바지 차림의 행인들이 많은 걸 보면 예년에 비해 높은 기온이 그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벽지가 흰색이기 때문에 천정이나 벽에 붙어 있는 모기들은 손쉽게 발견된다. 어머니 방도 문을 열어보면 두어 마리의 모기가 벽에 붙어 있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정작 어머니는 모기에 대해 타박하지 않으신다. “모기들이 나는 잘 물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럴 리가 있을까. 노인들의 피부는 기름기가 적어 모기들도 흡혈 충동을 덜 느끼는 건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기에 물려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보지 않아도 된다니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반면에 나와 아들은 무척이나 물것을 타는 편이다. 그래서 여름에 다리를 보면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하다. 특히 아들이 그렇다. 그래서 녀석은 자다가 귓가에서 ‘앵~’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약을 뿌리거나 배가 볼록해진 채 벽이나 천정에 붙어있던 모기를 기어코 잡아 죽이고는 다시 잠을 청한다. 나 역시 잠귀가 밝고 예민한 편이라서 맨 정신에 모기 우는 소리를 들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대개 취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속수무책으로 물릴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다.
세상에 생명 있는 것들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을 터이니 모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복잡한 생태계에서 모기도 또한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역할이라는 것이 뜨거운 피를 가진 동물들을 괴롭혀 그들로 하여금 삶에 있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모질고 잔인한 소명이 아닐 수 없다. 모기들도 자신들의 계절이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식을 위해서 혹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한 방울의 피라도 더욱 그악스럽게 빨아대고 있는 것일 게다. 그것은 그것대로 생존을 위해서 극성인 것이고 인간은 인간대로 가려움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응전하는 것이라면 작은 내 방은 하나의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생생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내가 가진 장비와 물리력들이 막강하지만 야음을 틈타 게릴라처럼 몰려드는 모기 역시 내 손바닥과 모기약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점점 진화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피를 많은 빤 녀석은 몸이 무거워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쉬고 있다가 약을 맞거나 손바닥 공격을 받고 몸이 터져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욕심이 지나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은 동일한 것 같다. 다만 곤충은 타고난 본능에 의해 그러는 거겠지만 인간은 욕망이 타성이 되고 결국 그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파국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 오늘 밤에는 또 얼마나 날쌔고 용맹한 모기떼를 만나게 될까. 피를 보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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