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내게는 비로소 가을이 시작되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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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바람이 매워졌다. 가을이 본래의 성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비가 그치면 먼 산으로부터 단풍이 시작되고 그 붉고 노란 빛이 이곳에 닿기 시작할 것이다. 긴 바지와 코트를 입고 나왔다. 가을은 이미 오래 전에 이곳에 닿았겠지만 그의 속살을 본 것은 오늘 아침이다. 나에게는 비로소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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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시집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후배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인현지하상가의 끝 부분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단출했다. 한 동안 상권이 죽어 음산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신포동과 개항장 일대의 상권이 살아나면서 구도심인 이곳도 덩달아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이곳은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지하도 계단을 걸어내려 가노라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도착했을 때, 후배는 취업준비생의 증명사진을 손질하고 있었다. 옛날 사진관과는 달리 요즘엔 기술이 하도 발달해서 편집과 보정, 인쇄와 재단을 모두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해 준다. 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사진 속 피사체는 언제나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뽀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사진을 찾으러 온 남학생과 어머니는 잡티를 제거하고 펑퍼짐한 얼굴을 잘록하게 보정한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후배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포즈를 취해 보였고, 후배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거울을 볼 때는 몰랐는데, 사진 속의 나는 무척이나 늙어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친구 임기성과 신포주점에 만났다. 11시부터 친구들과 낮술을 마셨다는데, 생각보다 심하게 취해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옆에는 우리 또래의 여자 친구가 동석해 있었다. 그녀는 학익동에서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거기서 막걸리 한 병씩을 마시고 주점 민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정호 누님과 종우 형, 그리고 신포동 문화건달들을 만났다. 취기에 실수를 한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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