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오랜만에 'Any old blues'를 찾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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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늦은 밤 특별한 이유 없이 후배의 LP바를 찾았다. 음악 카페에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찾아갈 것인가. 그런데 나는 음악을 들으려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서 ‘이유 없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순전히 취기였다. 택시를 타고 동춘동 ‘Any old blues’를 찾았을 때, 손님은 홀에 한 팀, 바에 한 명 뿐이었다.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후배는 종종 선곡 때문에 손님들과 언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한 채 들어와 트로트나 가요를 요구하는 손님에게 후배는 냉정하게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한다. 손님 입장에서는 “그럼 당신 집에서 혼자 음악을 듣지 뭐 하러 가게를 열고 손님을 받는 것이냐? 업소라면 사장의 의중과는 달라도 손님의 요구를 만족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고, 후배는 “누가 술 팔아 달라고 했느냐? 우리 가게의 음악적 취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찾아오지 마라.”라는 것이다. 사실 후배의 가게와 같은 LP바는 업소 나름의 음악적 색깔이 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야 음악을 깊게 감상하는 마니아층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만약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가게 음악이 영 파이더라. 완전 7080음악다방 수준이야.”라는 소문이 돌면 그 세계에서 해당 업소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의 까칠함은 가게 색깔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거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당장의 매상은 떨어지더라도 음악카페라면 음악으로 승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나 이후 자신의 명성에 있어서나 남는 장사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후배의 고집스러움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머리를 길게 길러 멋지게 뒤로 묶은 후배에게는 새로운 애인이 생긴 것 같았다. 무척 앳되어 보이는 그녀는 손님의 신청곡을 후배 대신해서 찾아 틀어주기도 하고 맥주와 기본 안주를 손님 앞에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다른 때는 타인의 연사에 대해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는데, 비가 내렸고, 낯선 바람이 불었으며, 기분 좋게 취해 있었기 때문인가 그녀의 환한 웃음을 만났을 때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 전 이혼한 후배에게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는데, 그러한 개인적인 아픔조차도 그녀가 모두 이해해주었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맥주 두어 병을 얻어 마시고(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와서 많이 마시고 한꺼번에 계산하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 거리로 나왔을 때, 비는 그쳐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한결 차가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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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귀가해 어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조금 쉬다가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 콜롬비아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으며 잠을 청할 생각이다. 창밖에서 바람이 웅웅거린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맞게 되는 가을과 겨울인데, 확실히 아파트보다 을씨년스러운 것 같다. 어머니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게 될까 봐 그것이 가장 걱정이다. 보일러를 틀면 되는데, 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는 썰렁한 집에 홀로 계시면서 절대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달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두려움과 기대가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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