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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길 위의 시인이 세상과 교통하는 법 : 이권 시인론 본문

리뷰

길 위의 시인이 세상과 교통하는 법 : 이권 시인론

달빛사랑 2017. 9. 8. 17:31

[발문]

길 위의 시인이 부박한 세상과 교감하는 법


1

이권 시인은 30여 년 간 철도노동자로 일하다 퇴직한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에는 달리는 기차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머물고, 바라보는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철로) 위에서 보낸 세월이 그의 시에 일정한 자양이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퇴직해 더는 길 위를 달릴 수 없게 된 시인은 시를 통해 다시 길 위의 삶들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의 시 속에는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일부러 찾아든 장소와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길 위에서의 시인의 시선은 흡사 카메라렌즈와 같다. 그 렌즈로 담아내는 현실의 모습들이 얼마나 핍진한지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의 추체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페르소나일 게 분명한 시적 화자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그가 만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물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도원역 지나 배다리 헌 책방

골목 가는 길

창영교회 앞에서 비를 만났다

 

만능설비 옥상 빨래 줄 미처

걷지 못한 빨래가 비를 맞고 있다

 

이발소 처마 밑 런닝구를 입은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빗속으로 번지는 담배연기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린다

 

점점 어두워지는 한낮

개코 막걸리 집에서 낮술 하다

바라본 골목길이 빗소리로 가득하다-배다리 가는 길전문

 

도시의 외진 막걸리 집에서 낮술을 마시는 시인의 모습이 다소 쓸쓸하게 형상화 된 이 시도 그렇거니와 그는 늘 어딘가를 향해서 길을 가고 있다. 부박한 현실과 고단한 일상에 속박되는 것을 철도노동자였던 시인의 전사(前史)와 성정은 용납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의 시들 중에는 어디어디로 가는 길이란 제목의 시들과 구체적 지명이 등장하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위에서 언급한 배다리 가는 길이외에도 삼강옥’, ‘지천리’, ‘구월동 로데오 거리’, ‘월미산 가는 길’, ‘소래 가는 길’, ‘뚝방길등이 바로 시인의 부지런한 도정(道程)을 형상화한 시들인 바, 도시의 산책자가 된 시인은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공간, 그리고 사물들에 대해 연민을 드러내거나 장년의 욕망과 관능적 상상을 드러내기도 하고, 세태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는 걸어가면서(혹은 무언가를 타고가거나) 욕망하고, 만나면서 연민하며, 보고 만지면서 탄식하게 되는, 그야말로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고여 있는 삶 속에서는 결코 획득하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시인은 길을 가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여정은 늦은 봄 오후 시내버스 타고/소래 가는 길 버스가/도림 삼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다”(‘소래 가는 길중에서)에서처럼 버스를 타기도 하고, “늦가을 오후 금방이라도 울음을/쏟을 것 같은 구름을 싣고/뚝방길을 달린다//자전거 체인에 사르르 감겨오는/뚝방길 길옆 풀밭에서/책갈피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도 하며, “직장에 출근하기 싫거나 학교가기/싫은 날 우리/공항철도 타고/을왕리 바닷가로 가자”(‘을왕리’)에처럼 공항철도를 타며 이루어지기도 한다. 타고 걷고 쉬다가 다시 걷고 타고 이동하는 도시의 노마드(nomad)이자 산책자인 시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 역시 시인과 함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추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초원의 노마드들과 시인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가 환경에서 기인하는 현실적 요인에 의해 강제된 여정이라면 시인의 경우는 자발적 의지와 본능적 욕망에서 기인한 여정이라는 점일 것이다.

 

3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시 세계를 특징짓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민이다. 작고 소박한 사물이나 소외되고 그늘 진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측은지심을 품고 있는 범인(凡人)의 상정(常情)일 것이다. 하물며 누구보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인 시인의 시심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그의 연민이 단순한 동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해당 인물의 마음에까지 자신의 감정을 깊숙이 이입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연민은 독자들의 공감을 획득하게 되고 더욱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방금 동인천역에서 내 옆을 스쳐간 아이/어디서 만났을까 낯이 익은 얼굴이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고 예쁜/머리핀이라도 사주고 싶은 아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처럼 잠시 스쳐간 이름 모를 소녀를 떠올리며 머리핀이라도 사주고 싶은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다음에 소개되는 시처럼 눈물을 흘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저물녘 동인천 양키시장 모퉁이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울고 있다

 

그녀의 몸이 얼마나 허술하게

봉인되어 있는지

입과 코에서

연신 울음이 새어 나온다

 

그녀의 울음에 훌쩍훌쩍 파도를

타고 있는 골목

점점 침몰해가고 있다

 

가끔씩 슬픔을 길어 올려야 또 다른

삶을 마중 나갈 수 있는 것

 

한 참을 울던 여자 골목 끝을 짚고

일어서고 있다 골목안의

울음을 주섬주섬

수습하며 돌아가고 있다

 

검게 그을린 하늘 비라도

한바탕 내렸으면 좋겠다-침몰하는 저녁전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가눌 수 없는 감정의 북받침을 경험하며 눈물을 머금고 있다. 그는 가끔씩 슬픔을 길어 올려야 또 다른/삶을 마중 나갈 수 있는 것”(3)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맨 마지막 연의 검게 그을린 하늘에서 내리는 는 연민으로 북받친 감정을 달래줄, 감정해소 기제로서의 눈물을 의미하는 객관적 상관물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인이 연민을 느끼는 대상이 직접 만나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인천 배다리 부근 설렁탕 전문

삼강옥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수많은 입 속을 들락거렸던 숟가락이

낯선 사람의 지문을 끌고

입속으로 들어왔다

 

많은 이의 목구멍으로 고기국물을

퍼 날랐을 숟가락

이빨자국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다

먹고사는 일에도 저마다의 상체기를

남기는 법 삼강옥 현관 신발장

 

저마다 다른 길을 끌고 온 신발들이

놓여있다 신발들의 상처가 깊다-삼강옥전문

 

배다리 근처 삼강옥이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3~5연이다. 뭇사람들과 숟가락을 공유하게 된 시인에게 그곳을 다녀간 손님들은 타인이면서 동시에 타인이 아닌 관계로 엮이게 된다. 매일 만나 함께 밥을 먹는 식구는 아니지만 먹는 도구인 숟가락을 공유함으로써 그 낯선 지문들은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식구가 되는 것이고, 그 얼굴을 모르는 익명의 식구들이 낸 이빨자국들은 바로 그들의 삶의 흔적이자 아픔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일에도 저마다의 상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인의 시선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실어 나른 신발에게 향하게 되는데 여기서 시인은 신발들의 상처가 깊다고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신발 주인들의 삶의 고단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그의 연민의 시선은 이처럼 사람과 사물,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 아닌가 한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뒷골목 밤만 되면

집집마다 붉은 꽃들이 피어나요

상호도 없이 예명으로 꽃을 내건 집

이곳에서의 소문은 모두가 지나가는

바람이에요 연대병력의 사내들이

지나갔다는 꽃들의

속설은 묻지 않기로 해요

 

꽃 대궁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운 애인이

생겨나요 잠시 후 꽃잎 속에서

걸어 나온 사내는

옛 애인이 되어 골목길로 추방당해요

 

밤에 피는 꽃이라고 향기 없는

꽃이라고 같은 꽃끼리

너무 미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다만 꽃의 이동경로와 꽃잎에 깃든

꽃말이 다를 뿐이에요

 

어쩌면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화엄의 꽃

관세음보살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화엄의 꽃전문

 

인간에 대한 그의 연민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시가 바로 '화엄의 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밤에 피는 꽃들인 매춘부의 삶을 언급하면서 그녀들을 화엄의 꽃’, ‘관세음보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만 그녀들도 나름의 꿈이 있는 존재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시인은, 세상에게는 (그녀들을) 무시하지 말라 요구를 하고 그녀들에게는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더 나아가 인간을 구원해 줄 구원자로서의 이미지(관세음보살)로 그녀들을 격상하기까지 하는데, 시 미학적으로도 절창인 이 시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단순한 동정을 넘어서서 해당 인물, 더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 존엄성의 차원까지 그 지평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4

인간과 사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품은 시인에게 자본과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 물신화된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면들은 결코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시인이란 바로 상상의 힘을 통해 그 모든 반문화, 비인간적 요소들과 투쟁을 벌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검은 새의 묘기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낼 때 마다

저 먼 나라에서는

죄 없는 엄마와 아이들이 죽어가요

핏빛으로 물드는 석양 누가 저 검은

새의 심장을

명중시킬 수 있는

새총 하나 갖다 줄 수 없나요-검은 새중에서

 

미국 전투기를 검은 새에 비유한 것이라 여겨지는 이 시에서 시인은 애꿎은 희생자를 양산하는 전쟁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시의 말미에서 그가 요구하는 새총은 약소국 민중 혹은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의 저항 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가정오거리 뉴타운 재개발 지역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나자/길은 골목을 버리고

하늘채 아파트로 들어가/엘리베이터가 되었다

 

(......)

 

아빠는 아예 술집에 발목을 심었고

엄마는 카바레에 뿌리를 내렸다

다 마당과 골목을 빼앗긴 탓이다-주객전도중에서

 

이 시에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상실한 인간의 본원적인 삶의 터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작 주인이어야 할 것들은 버림받거나 사라지고 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현상을 적절한 비유를 통해서 형상화한 이 시에서 시인은 이제라도 마당과 골목을 되찾아야 온전한 삶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독자들을 향해 강변하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세태에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천정 에어컨에서 산바람보다

바닷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을 연신 복사 중에 있다-오리지널’ 1

 

현대인들은 모든 것이 복제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사물과 상황의 진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교란을 보이게 되었다. 이 시는 그러한 현실에 대한 냉소를 통해 과연 오늘과 같은 세상이 살만한 세상인가하는 반성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시대란 할머니 장례조차 화장장과 공원묘지가/연계된 패키지 상품이고 “92년의 할머니 생조차 3일 만에 지워”(‘죽음이 예전 같지 않다’)질 수밖에 비정한 세계일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 다시 봄이 왔지만 바다로 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바람이 된 아이야 꽃이 된 아이야

수억만 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을 아이야

 

너희들 구하러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든 수백만의 사람들

 

진도 앞바다의 바닷물을

죄다 퍼 올리는 중이다-또 다시 봄전문

 

세월 호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아픔이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그 상처와 아픔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이들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부도덕한 정권은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은폐하고 호도하고 거짓말만 일삼아 왔고 그러한 부조리들에 대한 항거로서 진행된 것이 촛불집회였다. 권력은 악몽은 이제 그만 잊자고”(‘그날 이후’) 부추기지만 시인에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일 뿐이며 진도 앞바다의 바닷물을모두 퍼 올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5 

시인은 늘 관능적 사랑을 꿈꾼다. 사랑스런 아내와 자식이 있는, 번듯한 가정의 가장인 그에게 그러한 관능적 사랑에 대한 욕망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사랑을 욕망한다. 물론 시인에게 그것은 속칭 불륜의 사랑을 지칭하는 바람난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인 동시에 늙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며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꾸는 꽃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의 욕망은 종종 판타지적 성격을 필연적으로 띨 수밖에 없다. 물론 시인은 자신의 성애(性愛)에 대한 욕망의 이력을 숨기지 않고 푸른 달빛이 달맞이꽃의/꽃술을 애무하는 밤//나도 한때는 청량리 588/버려진/땅만 찾아들어/꽃을 피운 적이 있다”(‘달맞이꽃’)고 담담하게 고백하기까지 한다. 하필 버려진 땅만 찾아들었던 이유는 서두에서 밝힌 바 있는, 대상에 대한 연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략)

건너편에서 하얀 손을 흔들고/있는 너 나는/너에게/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대신 벌 한 마리 잠시 다녀갔을/뿐인데 아랫도리가/화끈거리고 쓰라리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수련

 

연못 건너편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한다기보다는 관념 속에서 조형된 이상적인 미인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나'는 그녀에게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사실 상상 속에서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라는 불가항력적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도덕적 관념이 아직은 완고하게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도리가화끈거리고 쓰라리다라고 말한 것은 상상 속에서지만 그 사랑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싶어 하는 시적 화자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선언한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상략)

어제 밤 꿈속 꽃그늘 아래에서

한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첫사랑을 죽여야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다며

 

꿈속에서 나를 목 졸라 죽인 소녀

꿈결처럼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꿈밖으로 걸어 나온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다-꽃 꿈을 꾸다전문

 

이 시에서 그는 사랑을 고백한 소녀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사랑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녀는 첫사랑을 죽여야만/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다며 시적 화자의 목을 조른 것이다. 목을 졸리는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손길이 목에 닿았을 때 꿈속의 시인은 쾌감을 느꼈을 게 틀림없다. 멀리서 지켜보거나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그녀의 손길이 구체적으로 내 몸에 닿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속의 그녀가 꿈밖으로 나왔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다시 또 소녀의 정체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알면서도 욕망한 사랑 앞에서 어떻게 첫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현실에서는 여전히 시인의 아내 또한 올연히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의 사랑이란 언제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그녀를 오인하는/일방통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얀 나비가 되어 나를 버리고 싶은 봄날

나비축제가 열린다는 함평행 기차를 탄다

 

함평역에 내려 많은 사람들이 허물을

벗고 간 여인숙에

그동안 끌고 온 날개를 부려 놓는다

 

복도 끝 마지막 방이 오늘밤 나의

묘지 이곳에 내 혼백을 눕힌다

 

아무도 나의 인적사항을 묻지 않아 바람벽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가명으로 숙박계를 적어 놓는다

 

수상한 냄새들이 부유하는 방안 밤새 알을

슬어 놓을 여자를 부를까 하다 그만 둔다

 

초저녁 꿈 내 몸에서 날아오른 나비 한 마리

나를 호명하며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괘종시계가 밤새 검은 물레를 돌렸지만

초저녁에 떠난 나비는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비축제가 열리는 엑스포 공원 중앙무대 나의

나비는 환한 햇빛 속에서

노랑나비들과 난교 중에 있다-‘나비의 꿈전문

 

현실에서의 불가항력과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윤색하는, 판타지로서 기능하는 그의 상상 속 욕망과 사랑에의 지향은 시 나비의 꿈에서도 핍진하게 드러난다. 하룻밤 잠자리 상대로 여자를 부를까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하는 행위도 그렇고, 마지막 연에서 내 욕망이 투영된 소재인 하얀 나비와 노랑나비들의 난교 장면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모두 그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다만 그가 현실적 도덕률의 범주를 용인하며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면, 환한 햇빛 속에서 대담하게 이루어지는 한낮의 집단 난교장면을 상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6

그의 시에서는 기후와 절기(節氣)에 대한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비 내리는 날의 정서를 노래한 지천리상강’, ‘윤달’, ‘폭설등의 시가 그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비, , 바람 등의 자연 현상과 절기는 시인의 예민한 감성의 현을 건드려 인간 본연의 애상적 정서를 드러내게 하는 매개가 되고 끝내는 부모를 포함한 가계(家系)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해 내는 작용을 한다.

 

비 내린다/서당 골에도 고무래봉에도/비 내린다

뒷산 증조할아버지 산소에도/큰집 함석지붕에도/비 내린다

마른 옥수수 대에 떨어지는 빗소리/갈 빛의 가을 내음이 난다/비 내린다

엄니 生時처럼/청무우 밭에 온종일/비 내린다-지천리전문

 

(....) 어머니 돌아가신 후 한 번도/흠뻑 울어 본적이 없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뻐꾸기/우는 날이면 없는/슬픔이라도/만들어 실컷 울고 싶다-‘뻐꾸기중에서

 

빨래 줄에 이불 홑청 빨아 널고/한 숨 푹 자고 오겠다던 엄니

장곡사 주지스님이 몇 번 /바뀌어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대신 엄니 몸에 꼬리가 자라나/개가 되어 돌아왔다는 풍문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새가 되어/집 앞 감나무에 앉아/갔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붉은 노을이 지나가고 부처를 부르지/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어둠의/시간이 찾아왔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흰 새 한 마리 /저문 강을 건너가고 있다-‘엄니전문

 

모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엄니는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 시적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시다.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이동성이 빠른 풍문소문이라는 시어를 통해 표현한 것도 그렇고 시각과 청각의 교차를 통해서 그리움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점도 시인의 조어(造語)와 이미지 변주 능력의 만만찮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집이 없던 아버지에게 까치집 문패라도 달아드리고 싶다며 뒤늦게 부르는 사부곡(思父曲)까치집역시 시인의 육친에 대한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드러난 시라고 할 수 있다.

 

7.

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가을날 오후 빨래 줄에 아내의

낡은 팬티가 걸려있다

언제부터인지

아내의 팬티에 꽃들이 사라졌다

 

더는 꽃 피울 수 없는 계절로

들어섰는지 나비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듯

감출 것이 없다는 듯

빤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빨래 줄에 걸린 민낯의 내숭

예쁜 꽃무늬로

꽃단장 해주고 싶다-꽃무늬 팬티

 

빨랫줄에 걸려 있는 아내의 속옷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꽃 피울 수 없는’, 다시 말해서 여성만이 가지는 고귀하고 신성한 생명 잉태의 능력을 상실한 아내와 부끄러울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이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아내의 속옷을 보면서 다시금 예쁜 꽃무늬로 꽃단장 해주고 싶다며 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노래하고 있다. 삶 속에서의 온갖 신산함을 함께 겪어온 평생의 반려, 아내에 대한 사랑의 송가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내 곁에서 마른 빨래를 개고 있는

()자에 순할 ()자의 봉순이

처 할아버지가 새 중에 새가 되라고

높은 뜻으로 지었다는 이름

 

아내는 봉순 이라는 이름이 천변에

널려있는 개똥같이

천한 이름이라며 불평을 한다

 

봉순 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도 푸른

하늘을 날 수 없었던 아내

 

지금이라도 예쁜 이름으로 개명해

또 다른 이름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친구가 되어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는 저녁

턱을 고이고 듣는 빗소리가 아프다-봉순이전문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자에 순할 ()자의 봉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내가 봉순 이라는 이름이 천변에/널려있는 개똥같이/천한 이름이라며 불평을하는 것을 들어오면서 봉순 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도 푸른/하늘을 날 수 없었던 아내에게 지금이라도 예쁜 이름으로 개명해/또 다른 이름으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는 저녁/턱을 고이고 듣는 빗소리에 아픔을 느끼고 있다. ”(‘봉순이’) 그 '아픔'은 기실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에 대한 남편으로서의 자책과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채 '날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아내에 대한 연민 때문이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8

초겨울’, ‘감꽃’, ‘정수사’, ‘석모도’, ‘도량석’, ‘꽃구경등은 그가 주객이 전도되고 갑들만이 판치는 세상, 자본에 의해 모든 것들이 상품으로 인식되는 시끄럽고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침잠하고 싶어하는 세계의 모습, 그리고 그 세계에 들고 싶은 바람을 노래한 시들이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을 넘어선 나이에 그가 소망하는 세계가 그러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충분히 노동했고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으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비타협적인 응전을 포기해 본 적이 없는, 고단하지만 성실한 노동자 출신 시인이기 때문이다.

 

새벽 3시 용화사 스님의 목탁

소리 따라

대웅전 앞마당을 돌고 도는

검정고무신 한 켤레

 

천개의 달이 뜨고 진다는 연못

달빛은 없고 새벽종소리만

검은 연못을 건너가고 있다

천년을 헤엄쳐도 대웅전 처마 끝이

전부인 청동물고기 한 마리

동쪽하늘을 헤엄쳐가고 있다

앞산 이마가 환해지는데 새벽

종소리를 따라간

내 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도량석전문

 

늦가을 오후 보문사 나한전 앞

산사의 가을 소리를 듣는다

 

수막새 기와에 쌓이는 풍경소리

청무 밭을 구르는 목탁소리

구구거리는 산비둘기 울음소리

이 모든 소리가 오늘의 법문인 듯

부처님도

스님도 도무지 말이 없다

 

사하촌(寺下村)에서 도토리 묵 한 접시

막걸리 한 되 박 시켜 놓고

저녁 종소리를 덤으로 얻어 듣는다

가을단풍이 되어 낙가산을 내려오는

사람들 석모도

앞바다가 붉게 물들어 있다-석모도전문

 

위에 예를 든 시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독자들 또한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 속에 앉아서 사찰의 종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저녁 종소리가 덤으로 주어지고 그 종소리를 따라간/내 귀는 아직 돌아오지 않, 세상과 격절된 산사에서 그는 어쩌면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끄러운 속세의 소리들을 깨끗이 씻어내며 종소리를 따라간 그의 귀는 기실 그 자신의 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9

무릇 시인의 시 속에는 해당 시인의 구체적 삶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는 법이다. 지금껏 살펴본 이권 시인의 시편들 속에도 당연히 시인이 걸어온 삶의 이력들과 그가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물론 필자의 과문과 주관적인 독법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를 오독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시를 씨는 동업의 후배로서 나는 그의 시가 너무도 쉽게 읽혔고(가볍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펜 끝에 힘을 뺀그 평범하고 익숙한 시어들을 통해서 현실과 상황의 비범한 의미들을 읽어낸 것에 대해 한편으로 부러워했고 내심 감탄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현실에 대한 섣부른 간섭과 상황에 대한 지나친 낙관 혹은 비관은 그 속에 담긴 숨은 진실을 들춰내는 데 있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실과 추억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힘센 현실과 과거의 추억은 명민한 시인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괴롭히고 때로는 고양시킨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고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정공법만이 능사는 아니다. 현재 자신의 조건과 상황을 타산하지 않은 채 현실과 대결하거나 과거의 기억을 신파조로 환기하는 것은 무모하거나 감상적인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권 시인이 현실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선택하기보다는 소통을 가로막고 단절을 조장하는 비정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찰자적 모드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시적 전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현실에 대한 이러한 거리두기는 현실의 추수나 자조적인 모습으로 오인될 수도 있지만 이권 시인의 경우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냉소로, 그러나 궁극에는 인간과 주변의 사물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현실을 변주하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는 기우일 거라는 생각이다.

 

이권 시인은 지난 해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되었던 국민들의 촛불집회나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것을 주변 동료들은 알고 있다. 그는 여전히 구체적 현실 속에서, 부조리에 저항하는 국민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이다. 그러한 연대와 실천은 어쩌면 도시를 산책하는 산책자로서 피해갈 수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는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관능적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평생의 동반, 아내와의 소박하지만 애틋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사실 그 누군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시인의 그와 같은 꿈들을 응원하며 앞으로 더욱 다채롭고 유쾌한 여행을 계속해주길 소망한다. 치열하고도 고단한 현실과의 접점에서 더욱 아름다운 시의 꽃을 피워주길 바란다. 도시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과 표정들 속에서 더욱 연민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산책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길 위에서 혹은 무리 속에서 나와 만나게 되었을 때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마음이 통해 가장 가까운 막걸리 집에서 편안하게 술잔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다채로운 여행의 기록이자 그 속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과 공간에 대한 느낌의 표백일 것이 분명한,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닮은 착하고 순정한 시를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그는 지금도 사랑과 연민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새롭게 여행할 목적지를 꿈꾸는 도시의 산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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