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아버지와 라디오( music - Freddie Aguilar, 'Anak' ) 본문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고물 라디오를 끝내 버리지 않으셨다.
나는 안다 아버지의 보물 창고, 옷장 두 번째 서랍 속에서 그것은
화폐개혁 이전의 때 낀 주화나 고장난 시계들과 함께
한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아버진 그 라디오를 통해 세상과 교감했고,
박정희 장군의 3선 개헌도 그 라디오를 통해 전해 들었다
김용운 고춘자의 만담을 듣고 웃다가,
'전설을 따라 삼천리'나 되는 길을 여행하다가,
'김삿갓을 따라 북한도 기행'했다
아버지와 라디오의 우정은 그토록 각별했다
그러던 어느 해 아버지, 하시던 사업이 망해 버린 후
한 해 사이 턱없이 늙어 버리자 라디오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고
심한 해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우람하고 세련된 티비가 들어오고 난 후로도
2년을 더 앓다가 결국 목숨을 놓아 버렸다
아버지의 정성어린 몇 차례의 수술에도
라디오는 끝내 다시 노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라디오를 끝내 버리지 않았다
음성다중 스테레오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도
진공관식 우정을 지켜왔던 것이다.
**moon.g.b(달빛사랑)
- '전설 따라 삼천리', '김삿갓 북한 방랑기' 등은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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